자랑스러운 한국인 손흥민(31·토트넘 홋스퍼)이 좀처럼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21-2022시즌 득점왕에 빛났던 풍모를 재연하지 못한 채 ‘골 침묵’에 허덕인다.
세계 축구계에서, 손흥민은 내로라하는 월드 스타로서 한국인의 긍지를 뽐내 왔다. 지난 시즌 EPL의 주인공은 두말할 나위 없이 손흥민이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득점왕에 등극하며 EPL 역사에 금빛을 수놓았다. 세계 최고 축구 마당인 EPL에서도 손꼽히는 걸출한 골잡이로 자리매김함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5-2016시즌 EPL 마당을 처음 밟은 이래 7시즌 만에 엄청난 결실을 올리며 크게 부른 ‘대풍가’였다. 그랬던 손흥민이 2022-2023시즌 들어 겨울잠에 들어간 곰처럼, 맹위를 떨치던 골 사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현지의 일부 토트넘 팬들은 실망한 나머지 손흥민의 벤치행을 주장할 정도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은 “손흥민은 로봇이 아니다”라고 옹호한다. 그렇지만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들 수밖에 없는 감독으로선 언제 태도를 바꿔 손흥민을 스타팅 멤버에서 교체 자원으로 돌릴지 알 수 없다. 그만큼 침체의 골이 깊다. 득점왕 2연패를 꿈꾸며 이번 시즌을 맞이했던 손흥민으로선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형세가 펼쳐지는 요즘이다.
물론, 이번 시즌 초반 돌출한 변수인 부상(안와골절)은 손흥민의 부진을 부채질했다. 부상 부위인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쓴 마스크는 아무래도 시야에 영향을 미쳐 경기력 저하의 한 요인이 됐다. 비록 지금은 부상의 공포에선 벗어났어도 아직 완벽한 몸 상태가 아닌 점이 침체의 늪을 헤쳐 나오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실정이다.
7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고지 등정 야망 불태워 역전극 창출하기를
손흥민은 2022-2023시즌 여간해서 골과 연(緣)을 맺지 못하고 있다. 기록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실재다. 토트넘이 정확하게 반환점을 돈 이번 시즌, 17경기(교체 1)에 출장해 4골 1어시스트만을 거둬들였을 뿐이다. EPL 으뜸을 다투는 세계적 골잡이로서, 또한 토트넘의 에이스로서 어울리지 않는 수확량이다.
손흥민이 EPL에 뛰어든 이래 펼쳐 보인 골 솜씨와 견주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손흥민은 부동의 주전으로 뿌리내리기 전인 첫 시즌(2015-2016)을 제외하곤 줄곧 두 자릿수 골을 포획하는 득점력을 뽐냈다. 이 6시즌 경기당 평균 득점은 0.44골이다. 거의 2경기에 한 골씩을 뽑아내는 대단한 기세였다.
이번 시즌은 어떠한가? 경기당 평균 0.24골로, 4경기에 한 골을 넣었다.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음이 한눈에 보인다(표 1 참조).
단순히 골 수 차이에서만 비롯한 부진이 아니다. 어떤 몸놀림을 보였느냐를 가늠하는 한 척도인 평점에서도 페이스가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손흥민은 2018-2019시즌부터 평균 평점이 7.10점(이하 후스코어드닷컴 기준)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지난 시즌엔, 팀 내 최고 평균 평점(7.51)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시즌 평균 평점은 간신히 7점을 넘겼다. 첫 시즌을 망라해 총 249경기(1월 18일·이하 현지 일자)를 소화한 평균 평점(7.10)보다도 낮다.
더욱 안타까운 건 시간의 흐름에도 여전히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완만하게나마 상승세를 보였으면 좋으련만, 답보 수준이다. 손흥민이 모습을 나타낸 17경기를 4분해 살펴보면 제자리걸음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해트트릭을 터뜨린 레스터 시티전(2022년 9월 17일)이 들어간 5~8차전(7.24)을 뺀 나머지 세 범주는 모두 평균 평점이 6점대다(표 2 참조).
이번 시즌, 손흥민은 단 2경기에서만 골맛을 봤다. 레스터 시티전 이후 잠잠하다가 9경기 만인 크리스털 팰리스전(2023년 1월 4일)에서 침묵을 깨는 골을 터뜨렸다.
이처럼 손흥민이 전반기의 답답함을 훌훌 털어 버리지 못한다면, 두 자릿수 득점 고지를 밟을 가능성이 멀어질지 모른다. 남은 19경기를 모두 출장하더라도 현재까지 경기당 평균 득점을 대입하면 4.56골을 추가하는 데 그친다. 6시즌 동안 이뤄 온 두 자릿수 등정 기록이 스러질 고비에 처한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크게 기지개를 켜고 뛰어가야 한다. 그럴 만한 충분한 잠재력을 갖춘 손흥민이다. 승부의 세계에서, 역전의 묘미는 무척 짜릿하다. 한국인의 염원을 한 몸에 받는 손흥민이 역전극으로 이번 시즌에 마침표를 찍기를 기대한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