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찬 감독도 적임자라 했는데…시즌 도중 또 모셔온 제2의 적임자, 믿어도 되나
OSEN 이후광 기자
발행 2023.01.06 14: 30

흥국생명 배구단이 시즌 전 구단을 일으킬 적임자라고 치켜세운 감독을 9개월 만에 내친 뒤 또 다른 적임자를 데려왔다. 이번에는 구단의 ‘적임자’라는 단어 사용을 믿어도 될까. 
윗선의 경기 개입 논란으로 쑥대밭이 된 흥국생명은 6일 혼란을 수습할 새 사령탑으로 김기중(48) 선명여고 감독을 선임했다. 지난 2일 권순찬 감독 경질 후 불과 나흘만의 일이다. 
흥국생명은 지난 2일 돌연 김여일 단장과 권순찬 감독의 동반 사퇴를 발표했다. 말이 사퇴지 사실상 경질 조치였다. 

흥국생명 수석코치 시절 김기중 감독 / KOVO 제공

팀이 부진에 빠진 것도, 권 감독의 건강이 악화된 것도 아니었다. 권 감독은 지난달 29일 수원에서 ‘절대 1강’ 현대건설을 꺾으며 2위에서 우승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전 시즌을 6위(10승 23패)로 마친 팀 분위기를 수습한 뒤 돌아온 김연경을 필두로 옐레나, 김나희, 김해란, 이주아, 김다솔 등의 팀워크를 견고하게 다지는 중이었다. 흥행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인기를 얻고 있던 터.
그러나 흥국생명 임형준 구단주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결정했으며, 단장도 동반 사퇴키로 결정했다”라고 권 감독의 지휘봉을 빼앗았다. 
취재 결과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말은 윗선의 일방적 경기 개입을 포장한 말이었다. 흥국생명 신용준 신임 단장은 전날 GS칼텍스전에서 논란과 관련해 “선수 기용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선수단 운영에 대해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감독, 단장 간 로테이션과 관련해 의견이 맞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의견이 다르다보니 갈등이 생긴 것 같다”라고 개입 사실을 사실상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구단이 개입을 했다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라고 납득이 어려운 해명을 늘어놨다.
권순찬 감독 / OSEN DB
선수단은 이를 정면 반박했다. 김해란은 “나는 구단의 개입이 있었다고 느꼈다. 선수들도 알고는 있었다. 감독님께 직접 말씀드린 적도 있다”라고 뒷이야기를 폭로했고, 김연경은 “선수 기용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원하는 경기를 하지 못하고 진 적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끄럽다. 배구계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일이 정말 안타깝다”라고 현실을 개탄했다. 
흥국생명은 지난 4월 권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하면서 “선수들과의 소통, 과학적 분석과 체계적 훈련 등을 통해 흥국생명을 새롭게 바꿀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팀을 새롭게 재건할 지도자를 찾았다”라며 “솔선수범형 리더이자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권순찬 감독이 핑크스파이더스의 명예를 다질 적임자다”라고 ‘적임자’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하면서 신임 감독에 힘을 실어줬다. 
결과적으로 구단은 권 감독에게 선수단 운영에 대한 전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선수단 운영의 총 책임자인 권 감독은 본인의 뜻대로 선수 및 로테이션을 구성할 수 없었고, 윗선과 갈등을 겪으며 9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그들이 원했던 건 결국 구단의 말을 잘 듣는 지도자가 아니었나 싶다.
흥국생명은 6일 김기중 감독을 사령탑 자리에 앉히면서도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지도력을 겸비한 김기중 감독이 적임자라고 판단해 선임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단의 신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서 김 감독이 흥국생명을 다시 일으킬 적임자가 될지는 미지수다. 김연경은 “다음 감독님으로 누가 오신다고 해도 신뢰할 수 없다. 결국 구단에서 원하는, 말 잘 듣는 감독을 선호한다는 거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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