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하고 정겨운 사제의 정을 꽃피운 ‘최제모’, 다시 영근 ‘안동고 전설’[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22.12.19 10: 00

“‘최제모’여, 영원하리라!”
힘찬 외침이 한겨울 안동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사제(師弟)의 정을 한껏 나눈 스승과 제자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다. 석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1년 뒤를 기약하며 서로를 힘껏 껴안은 모습에선, 행복감이 진하게 배어 나왔다. 스승과 제자가 하나로 어우러진 순간이었다.
따뜻함을 자아냈던, 보기 좋은 정경의 마지막 한 점은 헹가래였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듬뿍 담은 제자들의 애정 어린 들어 올림에, 하늘을 나는 듯한 스승의 마음은 흐뭇함으로 충만했다.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3시간이었다. 고교 축구계에, ‘안동고 전설’을 창출했던 스승과 제자들이 화려했던 그 날을 되돌아보며 끝을 모르는 양 정담을 나눴던 한때였다.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과 은혜를 잊을 수 없다며 감사한 마음을 표출했고, 스승은 한국 축구의 동량으로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들을 애정의 눈으로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3년 만에 다시 어우러진 한자리였다. 엄습했던 코로나 19 팬데믹을 야속해 하며 고대해 오던 만남의 장이었다. 2013년 태동한 이래 한 해를 보낼 때마다 끊임없이 모여 사제의 정을 나누던 ‘최제모(최건욱 감독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의 모임)’의 단절됐던 맥을 이은 뜨거운 자리였다.
지난 17일, 안동의 밤은 따뜻하기만 했다. 스승과 제자들이 정답게 나누는 이야기에, 한겨울의 강추위는 파고들 틈조차 없었다.
“언제까지나 생명력을 유지하며 스승님의 은혜를 기릴 ‘최제모’를 만들 터”
1990년대~2000년대, 안동고는 고교 축구의 전설이었다. 1992년, 전통에 빛나는 청룡기 중·고 대회에서 우승의 첫걸음을 내디딘 이래 약 20년간 ‘안동고 천하’를 뽐내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우승 13회, 준우승 7회를 비롯해 4강 약 50회의 눈부신 발자취를 남겼다.
그 바탕엔, 고교 축구 최고 용장 최건욱 감독(64)이 존재했다. 그의 조련을 받으며 안동고는 환골탈태하며 고교 축구 명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아울러 ‘국가대표 산실’로도 자리매김했다. 최윤열을 필두로 김도균·김진규·백지훈 등 대한민국 축구를 선양하는 데 한몫한 뛰어난 선수들이 잇달아 쏟아졌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정승원(수원 삼성) 역시 그가 길러 낸 제자 가운데 하나다. 특히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끈 2006 독일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팀엔 김진규와 백지훈이 발탁됨으로써 안동고의 성가가 드높아지기도 했다.
달도 차면 기운다. 절대 강자 안동고도 시나브로 쇠락해 갔다. 인구의 대도시 유출에 따른 총 학생 수 감소가 원인이었다. 축구팀 TO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면서, 유지 자체가 어려워졌다. 2016년 7월 결국 대통령금배 출전을 끝으로 안동고는 해체의 비운을 맞았다.
굽힐 줄 모를 듯했던 ‘맹장’인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승부사’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영문(현 예일메디텍)고등학교를 거쳐 2020년 10월부터 대신대학교 창단 감독으로서 또 다른 한국 축구 자원들을 가르치고 기르고 있다.
옛 제자들은 이처럼 애오라지 인재 육성에 전념하는 스승의 은혜를 잊을 수 없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의 결정체인 ‘최제모’가 탄생한 배경이다. 2013년 12월, 첫 모임이 열린 이래 매년 40~60명가량의 은퇴한 제자들을 비롯해 현역 선수들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그때 그 시절을 되새기며 정겨움과 뜨거움으로 가득 찬 ‘추억의 장’을 연출한다.
김진규 코치-최건욱 감독
‘최제모’는 김진규 FC 서울 수석 코치가 주도해 결성했다. 모든 제자가 다 한결같은 마음이지만, 김 수석 코치의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은 특히 더하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가 다 똑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들 ‘감독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낼 만큼, 감독님을 우러러보고 사랑합니다.”
최제모 출범 초창기에, 김 수석 코치는 비용 대부분을 충당했다. 물론 스스로가 원해서 한, 기꺼운 마음으로 한 부담이었다. 2003년 프로 세계에 뛰어든 뒤 매년 고교 후배들의 겨울철 담금질을 위해 패딩 수십 벌씩을 모교에 기증해 온 김 수석 코치로선 주저할 리 없는 스승을 향한 마음이었다.
지금은 제자들 모두가 한몫을 거든다. 제자들이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됐음이 엿보인다.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며 감독님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할 듯싶네요. 감독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못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죄송스러움이 밀려오곤 해요. 선수들을 가르치다가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지금도 감독님께 전화해 가르침을 받을 때가 행복합니다.”
안동고를 이끌고 일대를 풍미했던 그의 지도자론이 제자에 의해 계승되고 있음이 눈앞에 그려졌다. 제자의 솔직하고 정다운 고백에, 스승도 화답했다.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서 동기를 부여해 선수들이 지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지도자의 본분을 찾으려는 김 수석 코치의 훌륭한 마음가짐이 마음에 와닿네요. 제가 제자를 잘 가르쳤다고 봐도 될까요?(웃음)”
전국적으로, 최제모처럼 오랜 시일 스승과 제자가 하나로 어우러져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받는 모임은 찾기 어렵다. 희귀성만큼이나 영속성에서도 역사에 훈훈한 미담으로 남겨졌으면 좋겠다. 김 수석 코치는 자신했다.
“저를 비롯해 제자들 가운데 누구라도 살아 있을 그 날까지 ‘최제모’는 길이 생명력을 유지하며 스승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만남의 장으로 남을 겁니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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