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IRA 가이던스’, 궁극으론 ‘친환경 혜택 유지’...정부-현대차 총력전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22.12.13 14: 01

 “한국 산업의 친환경 혜택을 사수하라.” 
미국 재무부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안) 가이던스 발표를 앞두고 한국 정부와 현대차그룹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의 움직임은 특명을 사수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방불케한다. 당장은 ‘IRA 가이던스’에서 유리한 조항을 끌어내는 것이지만 궁극으론 IRA 내에서 한국 산업의 친환경 혜택을 유지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 재무부는 8월 발효된 IRA의 세부 규정을 명확히 하기 위한 가이던스(guidance)를 수립하고 있다. 가이던스는 올해 말까지 발표할 예정인데, 이를 위해 미국 재무부는 11월초와 12월초 두 차례에 걸쳐 각 부문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지난 5월 방한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하얏트 호텔 언론 브리핑에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 관련 부처의 움직임을 보면, IRA 입법에는 대처가 늦었지만 시행세칙격인 가이던스까지 놓칠 수는 없다는 절실함이 묻어난다. 
지난주에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 윤관석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정부·국회 합동 대표단이 미국 워싱턴DC로 날아갔다. 11일에는 외교부 이도훈 2차관도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 참석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했다. IRA 대응에서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방미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앞으로도 IRA 가이던스에 우리측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해나가는 동시에 업계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IRA 내 다양한 인센티브 혜택을 극대화해 나갈 계획이다”고 했다.
▲ 정부의 가까운 목표, 긴 목적 
안 본부장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는 두 가지 목적을 설정하고 있다. 우선은 임박한 가이던스에서 유리한 조항을 이끌어 내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IRA 자체를 유리하게 풀어가는 노력이다. 최종 목표는 '친환경 자동차 세액공제' 항목의 법 개정이 되는 셈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 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설득을 해 나갈 작정이다.
우리 정부의 법 개정 및 행정조치 요구는 지난 8월 IRA가 발표되자 마자 시작됐다.
미국 상무부 면담은 물론 미국무역대표부(USRT)에 서한을 보내 한국산 전기차가 세제혜택 대상국에 포함될 수 있도록 요청했고, 법안 발효 직후부터는 국내 경제와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미국 정관계 설득에 나섰다. 
9월초 정부는 미국 정부와 한미정부협상단 채널을 구축하기로 합의하고, 같은 달 16일부터 한미 정부 협상단 실무협의체를 가동시켰다. 11월 4일에야 미국과의 첫 협의를 시작한 EU보다 빠른 행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산업부 장관, 통상교섭본부장, 외교부 장관 등이 직접 미국 바이든 대통령, 해리스 부통령, 美 행정부 관료들과 美 의회 의원들을 만나 한국차에 대한 차별적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을 꾸준하게 전달했다.
국회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8월 말에는 미국을 방문한 여야 국회의원단이 한국의 우려를 전달했고, 9월 1일에는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기반한 미국의 한국산 전기차 세제 지원 촉구 결의안’을 초당적으로 가결시켰다. 
한국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대응에 미국 언론들도 주목했다.
미국 유력 매체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0월초 "미국 주요 동맹국들은 IRA에 분노하고 있다"며 "(IRA에) 가장 반발하는 국가는 한국"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도 10월 "유럽과 일본 등의 전기차 제조업체들도 보조금 차별 조항에 불만을 품고 있지만, 유독 한국이 솔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적었다.
국내 기업들도 정부의 국내 기업 입장 반영 노력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지난 11월 29일 열린 ‘IRA 대응 민·관 합동 간담회’에서 현대차 장재훈 사장은 “IRA 발표 이후 정부에서 미국 행정부 및 의회 설득에 발벗고 뛰었다”며 “다른 나라보다 가장 먼저, 또한 제일 적극적으로 미국 측에 문제제기를 하고 동맹국과의 공조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원팀으로 움직여 얻어낸 성과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정부, 국회는 물론 현대차 등 한국기업들이 원팀으로 힘을 합친 결과,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친환경 자동차 세액 공제 3년 유예를 골자로 하는 법 개정 발의도 이끌어냈다. 
라파엘 워녹(Raphael Warnock) 조지아주 민주당 상원의원은 9월 말 IRA의 친환경 자동차보조금 지급 관련 조항 적용을 3년 유예하도록 하는 ‘미국을 위한 합리적인 전기자동차 법안(the Affordable Electric Vehicles for America Act)’을 발의했다. 
11월에는 민주당 소속 앨라배마주 테리 스웰(Terri Sewell) 하원의원을 중심으로 같은 내용의 법안이 하원에서도 발의됐다. 
미국 정가에 정통한 인사는 “올해 내 법 개정은 힘들 수 있지만, 중간선거 및 레임덕 의회라는 정치적인 제약 속에서 한국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미국 의회에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수정 법안 발의를 이끌어냈다는 점 등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던스가 중요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현안은 미국 재무부 가이던스에 우리나라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자동차·배터리·소재·에너지·철강 등 관련 업계 간담회, 통상 전문가·법조계 자문 등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 친환경차 세액공제 이행에 3년의 유예기간 부여, 상업용 친환경차 범위 확대, 배터리 요건 구체화 등 법안의 세세한 부분을 담은 의견서를 두 차례에 걸쳐 제출했다. 
특히 미국 내 생산 조건이 적용되지 않는 ‘상업용 친환경차 세액공제’를 한국 기업들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상업용 친환경차’의 범위를 확대하고, 집중적인 세액공제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의견서 전달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한국측의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11월 1차 의견서 제출 전에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행정부의 IRA 집행을 총괄하는 존 포데스타(John Podesta) 백악관 국가기후보좌관과의 화상 면담에서 "미국 행정부가 IRA를 이행하기 위한 하위 규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한국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줄 것"을 요청했다. 
12월 2일 2차 의견서 제출 직후에는 정부와 국회가 합동 대표단을 구성해 지난 5일 미국을 방문, 미국 행정부 및 의회 주요 인사를 만나 한국측 요구를 전달했다. 
미국 의회에는 ‘친환경 자동차 세액공제’의 3년 유예 내용을 담은 IRA 개정안 통과의 필요성을 적극 제기하고, 미국 행정부에는 한국이 제시한 의견을 재무부 가이던스에 최대한 반영해 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 내에서도 한국 정부의 ‘상업용 친환경차’ 관련 요구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6일 ‘자동차회사들과 한국이 상업용 EV 세액공제 적용 촉구’라는 제목의 워싱턴발 기사에서 “많은 자동차회사들과 한국정부가 의회에서 승인된 기후 법안(Climate Bill)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EV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바이든 행정부에 상업용 전기 자동차 세금 공제를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재무부에 상업용 친환경 자동차’를 광범위하게 해석하여 우버나 리프트 등 차량공유 기업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렌터카, 리스 차량을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산업계 관계자는 "일단 상하원을 통과해 발효된 법안을 개정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며 "지금은 재무부의 가이던스에 집중해 한국 기업들이 최대한의 혜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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