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처음부터 월드컵이었을까?
월드컵이 진정한 월드컵으로 거듭나기까지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는 월드컵의 ‘월드(World)’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선 월드컵에는 세계 모든 대륙의 국가가 참여할 수 있는 문자 그대로 전지구적인 축구 대회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사실 유럽과 남미 대륙을 뺀 나머지 대륙의 국가들은 오랜 시간 동안 들러리에 불과했다. 타 대륙 국가들의 실력이 부족했던 것도 원인이 될 수는 있겠으나, 그런 부분을 떠나 과거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 할당된 월드컵 본선 티켓 숫자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이 지역 국가들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것이 ‘적어도 축구를 통해서는 우리도 세계적인 나라가 됐구나’ 하는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한 국가적 성취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FIFA 월드컵은 언제부터 진정한 ‘월드’컵으로 거듭났다고 볼 수 있을까? 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을 최초의 진정한 월드컵으로 평가하고 있다. 1982년 대회는 월드컵 사상 최초로 24개 팀이 본선 진출한 대회였다. 아프리카에 2장, 아시아·오세아니아에도 2장의 본선 진출 티켓이 분배됐다. 1978년까지는 16개 국가가 본선에 올랐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는 1장의 출전권만이 배정됐다. 지금이야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의 평범한 뉴스가 됐지만,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축구에 있어 월드컵 본선 진출은 꿈 같은 일이었다. 그 배경에는 월드컵 본선의 ‘좁은 문’이 큰 몫을 했다.
2022년, 제22회 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에는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에서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이 많다. 해외에서 온 노동자들이 대략 80만 명이라고 하는데, 카타르 전체 인구가 3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장, 도로와 숙박시설 등 주요 건설에 참여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노동환경은 비참했다. 너무나 뜨거운 건설현장은 물론이고, 노동 외 시간에 숙식을 하는 곳은 난민 수용소 수준이었다. 인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월드컵 노동현장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7,000명 가까운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카타르 정부는 월드컵 인프라 건설과 직접 관련된 노동자의 사망은 거의 없었다고 발표했다. 카타르의 후견인이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카팔라 제도’뿐만 아니라 카타르 월드컵의 여러 문제가 전세계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자 FIFA는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 노동 환경에 대해 면밀하게 모니터링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카타르 정부도 2020년부터 카팔라 제도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세계인들의 전반적인 시선은 좋지 않다.
애초에 카타르가 월드컵을 개최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카타르에 월드컵 유치 자격을 부여한 FIFA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앞서 실시된 FIFA 현장실사에서 낙제점을 받았음에도 타 경쟁국가들을 제치고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여러 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오일 달러를 앞세워 월드컵 유치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FIFA 집행위원 등 고위 인사들과의 다수의 의혹이 제기됐다.
물론 카타르 정부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 카타르를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한 FIFA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스포츠 조직'이 되어버린 FIFA가 오명을 벗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변화가 필요하다. 월드컵을 만들어 세상에 많은 기쁨을 준 FIFA가, 스스로 월드컵과 축구를 더럽히는 행동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보다 FIFA의 자정이 필요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월드컵 축구의 성공, 발전도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FIFA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새 역사를 쓰길 바란다.
이렇듯 책 '세계사를 바꾼 월드컵: 지적이고 흥미로운 20가지 월드컵 축구 이야기'는 월드컵과 관련한 모든 것을 담아냈다. 역사는 물론 시대를 관통하는 담론까지 여러 관점에서 월드컵을 조명하고 있다.
저자 이종성은 한양대학교 예술체육대학 스포츠산업학과 교수이다. 1982년 학교까지 빼먹으며 월드컵에 입문한 뒤 스포츠 팬이 됐다. 이후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서 스포츠 담당 기자로 일했다. 영국 드 몽포트 대학교에서 스포츠 문화사 석사 과정을 밟았다.
“남북한 축구역사 1910-2002: 확산과 발전”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종성은 이후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저서 'A History of Football in North and South Korea'를 영국에서 출간했고 국내외에서 발표한 저서로는 'Softpower, Soccer, Supremacy: The Chinese Dream'(공저), '스포츠 문화사', '인공지능이 스포츠 심판이라면'(공저) 등이 있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