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력이 강하면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우승하려면 수비력이 강해야 한다.”
축구계에서, 금언으로 받아들여지는 말이다. 한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려면 탄탄한 수비력이 필요조건임을 강조한 격언이다.
화려한 공격 축구는 팬들을 즐겁게 한다. 환상적 플레이를 바탕으로 골을 뽑아내는 공격수가 팬들의 사랑을 받는 까닭이다. 아무래도 멋들어진 골이 터지는 순간 환호하며 갈채를 보내는 게 팬들의 생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다득점이 반드시 마지막 웃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기 팀이 넣은 골 이상을 상대편에게 내줘 쓰라린 패배의 눈물을 흘릴 때가 많은 스포츠가 축구다.
그런데 보통 이 명언은 페넌트 레이스에서 더욱 진가를 나타낸다. 한 시즌에 수십 경기씩을 치르는 장기 리그에서, 수비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우승을 노리려는 야망은 물거품처럼 스러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한 자릿수 경기를 치르고 정상을 밟을 수 있는 대회에선, ‘수비력 = 우승’의 등식이 꼭 작용하는 철칙은 아니다. 막강의 공격력을 앞세워 우승컵에 입맞춤하는 예도 곧잘 눈에 띄곤 한다.
인류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인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은 페넌트 레이스는 아니다. 1년 가깝게 펼쳐지는 리그와 달리 한 달가량 벌어지는 대회전으로, 세계 최강을 가리는 ‘축구 제전이다.’
그렇다면 월드컵에서 우승하려면 공격력이 뛰어나야 할까, 아니면 수비력이 튼실해야 할까? 정답은 강한 수비력이었다. 최근 벌어진 여섯 번의 월드컵에서 객관적으로 입증된 ‘모범 답안’이었다. 역대 월드컵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우승 비결, 곧 승패를 가름하는 지배 요소는 수비력이었다.
모로코, 수비력에서 최강 뽐내… ‘자린고비’ 수비력 앞세운 브라질·잉글랜드 등도 우승 1순위현행 체제가 도입된 1998 프랑스 대회부터 2018 러시아 대회까지 여섯 번의 월드컵에서, 우승 팀의 발자취를 훑어보면 탄탄한 수비력을 디딤돌 삼아 정상까지 내달렸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여섯 번 모두 가장 강력한 수비진을 구축한 팀이 환호작약하며 우승의 영광을 만끽했다.
이 기간에 우승한 나라는 프랑스(1998)→ 브라질(2002 한·일)→ 이탈리아(2006 독일)→ 스페인(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2014 브라질)→ 프랑스(2018)였다. 이들 6개국이 각 대회에서 보인 넉아웃(결선) 스테이지(16강전~결승전) 성적을 보면 왜 수비력이 우승으로 가는 지름길인지가 뚜렷이 엿보인다.
현 체제에서 우승하기 위해선 모두 7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룹 스테이지 3경기와 결선 스테이지 4경기다. 따라서 여섯 번 대회에서 우승한 나라가 치른 결선 경기 수는 24(4×6)다. 이 24경기 중 물경 17경기에서, 우승국은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표 1 참조).
우승 6개국(프랑스 2회)이 기록한 무실점 경기(클린 시트) 비중은 70.84%에 이른다. 그야말로 ‘자린고비’ 수비력을 뽐냈다. 1실점 5경기(20.84%)까지 합치면 절대다수(22경기·91.67%)로서, 수비력이 얼마나 우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는지가 쉽게 그려진다.
가장 대표적 보기는 2010 대회 챔피언 스페인이다. 결선 4경기에서, 스페인은 문전에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쳤다. 새와 물고기조차 파고들 여지가 없는 굉장히 촘촘한 그물망 수비로 첫 월드컵 정상을 밟는 기쁨을 누렸다. 이때, 스페인이 잡아낸 골 수가 4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우승의 밑거름은 수비력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지표다.
1998 대회부터 2006 대회까지 우승국은 결선 스테이지에서 한 골씩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경기당 평균 실점이 0.25골로, 역시 무척 ‘짠물’ 수비력을 뽑냈다.
이처럼 최근 치러진 여섯 번 대회에 비춰 볼 때, 2022 카타르 월드컵은 누구의 품에 안길까?8강전을 앞둔 8일(현지 일자) 현재, 16강 관문을 뚫은 8개 팀은 그룹 스테이지(조별 라운드)부터 16강전까지 4경기씩을 소화했다. 이를 토대로 할 때, 6개국이 경기당 평균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6개국은 모로코(0.25골)→ 크로아티아·브라질·네덜란드·잉글랜드(이상 0.5골)→ 아르헨티나(0.75골) 순으로 강력한 수비력을 과시했다. 프랑스(1골)와 포르투갈(1.25골)은 경기당 한 골 이상씩을 허용했다(표 2 참조). 단순히 기록 측면에서 전망했을 때, 경기당 평균 실점이 1골이 되지 않는 6개국 가운데 한 팀이 우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축구엔 또 하나의 명언이 존재한다. “축구공은 둥글다.” 전력의 우열을 떠나 승패가 갈리는 경기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스포츠가 축구다. 기록은 참조 사항일 뿐 절대 평가 요소는 아니다. 손쉬운 예상을 농락하는 축구가 지닌 매력이다. 과연 이번 대회에선, 수비력이 우승의 제1 요소로 기능할지, 아니면 전철을 거부하는 새로운 길이 나타날지 궁금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