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거기까지였다. 아시아 축구가 굴기(崛起)를 멈췄다. 2022 카타르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에서, 화두로 떠올랐던 아시아 축구 돌풍은 8강 문턱에서 모두 잠잠해졌다. 마지막 보루였던 한국마저도 더는 솟지 못했다.
역대 최다 승수를 쌓으며 치솟던 아시아 축구였건만, 그 한계는 16강이었다. 넉아웃 스테이지(결선 토너먼트) 첫판(16강전), 아직은 엄존하는 세계 축구의 벽을 실감하며 물러서야 했다. 세계 축구의 양대 산맥인 유럽과 남미가 형성한 두꺼운 벽을 깨뜨리기에는 다소 힘이 모자랐다.
이번 월드컵에서, 아시아 축구는 3개국씩이나 그룹 스테이지 관문을 뚫고 결선에 오르는 맹위를 떨쳤다. 역대 최대였다. 지금까지 한 대회에서, 최다 결선 진출국 수는 2로서 두 번 있었다. 2002 한·일 대회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였다. 두 대회 모두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 축구의 명예를 드높였다.
이번 월드컵에선,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호주가 AFC(아시아축구연맹)의 자존감을 곧추세운 대표 기수였다. 아시아인의 희망을 부풀리며 2차 관문 돌파에 나선 세 나라였다.
허무했다. 16강전 첫 주자로 나선 호주가 아르헨티나에 1-2(3일·이하 현지 일자)로 져 드리워졌던 어두운 구름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짙어졌다. 이틀 뒤(5일), 일본은 크로아티아에 연장전까지 승패를 가리지 못한(1-1) 끝에 승부차기(1-3)로 물러나며 8강 티켓을 내줬다. 같은 날 네 시간 뒤, 한국은 역대 월드컵 최다(5회) 우승국이며 FIFA 랭킹 1위(1841.30점)인 브라질에 1-4로 패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를 기약한 아시아 축구였다. 1930년에 첫 잔을 띄운 월드컵이 92년의 연륜을 쌓는 동안, 아시아 축구가 이번 대회처럼 이처럼 거센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적은 여태껏 없었다. 개막 전, 세계가 예상하지 못했을 듯싶은 아시아 축구의 초반 돌개바람이었다.
한국·일본,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양대 강국 이미지 굳혀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축구는 2002 한·일 대회를 능가하는 개가를 올렸다. 역대 최다 승수를 올리는 승전고를 울렸다. 2002 대회 때 거둬들인 5승보다 2승을 더 결실했다(표 참조).
20년 전, 아시아는 전 세계 축구 판도에 격변을 일으키며 월드컵 역사에 굵은 한 획을 그었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했던 대회에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선풍을 일으켰다. 그전까지 역대 대회에서 수확한 4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뿐이랴. 한국이 4위의 위업을 이뤘고, 일본도 그룹 스테이지 관문을 뚫고 16강에 올랐다. ‘축구 변방’에 불과하던 아시아가 일약 중심권으로 들어선 ‘깜짝 무대’였다.
그렇긴 해도 한국과 일본을 앞세운 아시아 축구의 약진은 평가절하의 시선을 따돌릴 수 없었던 점도 사실이었다. “개최국 프리미엄에 따른 한때의 용트림일 뿐이다”라는 시각을 부인하기 힘들었다. 그 뒤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네 차례 대회에서 나타난 AFC 회원국의 성적은 이 시각에 힘을 실어 줬을 뿐이었다. 한국(2010 남아공)과 일본(2018 러시아)이 각각 한 차례씩 16강 진출 티켓을 따내는 데 그쳤으니, 뭐라고 변명하기에도 궁색했다.
그런 냉혹한 시선을 말끔히 불식한 카타르 대회였다. “더는 세계 축구의 들러리로서 희생양이 될 수 없다”라는 아시아 축구의 외침이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킨 마당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AFC는 두 가지 뜻깊은 기록을 새로 세웠다. 물론 역대 대회 최고치다. 하나는 넉아웃 스테이지 최다 진출(3개국)이고, 또 하나는 최다 승수(7)다. 한국·일본·호주 등 세 나라는 두 기록에 모두 연(緣)을 맺으면서 아시아 축구의 비약을 이끌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축구의 양대 최강국으로서 굳게 자리매김했다. 22회의 무대가 열린 월드컵에서, 두 나라는 역대 최다승 기록을 나란히 쌓았다. 각각 7승을 올려, 각기 3승으로 그 뒤를 잇는 3개국(사우디아라비아·이란·호주)의 배 이상 승리를 수확했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거둔 14승은 AFC가 올린 24승의 절반 이상(58.3%)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아시아 축구를 떠나 한국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일본에 선두 한 자리를 내줬다는 것이다. 지난 러시아 대회까지 한국은 통산 6승을 올려 일본(5승)보다 한 걸음 더 앞서 나가며 명실상부한 아시아 맹주로서 이름을 떨쳤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1승에 그쳐 2승의 일본과 선두를 반분해야 했다.
한편, 북한도 월드컵 무대에서 승리를 구가한 AFC 6개국에 이름을 올린 점도 눈에 띈다. 1966 잉글랜드 대회에서, 북한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첫 승을 올리며 8강에 오른 바 있다. 당시엔, 결선 첫판이 지금과 달리 8강전이었다.
아시아 축구는 카타르 월드컵 여정을 끝냈다. 빛났던 자취를 역사에 간직하고 2026 북중미 3개국(미국·캐나다·멕시코) 대회를 기약하며 새로운 걸음을 내디딜 때다. 4년 후 얼마나 더 성장하며 세계 축구의 중심권으로 진입할지 그 날이 기다려진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