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의 뚝심이 12년 만의 월드컵 16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꿋꿋하게 믿고 내보내며 이제는 대체불가 자원으로 성장한 황인범(26, 올림피아코스)이 있었다.
벤투 감독 축구의 중심은 빌드업과 강한 압박이다. 이 과정은 왕성한 활동량과 볼 간수 능력, 패스 능력을 갖춘 선수가 있어야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황인범은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그리고 과감하게 전진하고 침투 패스를 뿌려줄 수 있는 담대함까지 지녔다. 황인범이 ‘벤투호의 황태자’로 불리게 된 이유다.
그러나 황인범은 벤투호 초반, 황태자에 걸맞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패스미스는 잦았고 작은 탈압박 능력에서도 아쉬움을 보였다. 비판의 화살이 벤투 감독은 물론 황인범에게도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황인범을 꾸준히 중용했다. 뚝심있게 황인범을 중원의 핵심 선수로 여겼다. 2선과 3선에서 공격을 조율하는 적임자로 믿고 밀어 붙였다. 비록 실수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지만 황인범은 점점 자신있게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제 황인범에게 아시아 무대는 좁다. 월드컵이라는 세계 무대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과시했고 12년 만의 월드컵 16강 진출에 주역 노릇을 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도 황인범은 자신의 역량과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는 기록에서도 증명할 수 있다.
통계전문업체 옵타는 조별리그 출전 선수들의 공격 참여도(Attacking Sequence Involvements) 기록을 발표했다. 공격 참여도는 슈팅과 기회 창출, 슛까지 이어진 빌드업 관여도 등을 종합해서 선수의 공격 관여 정도를 설명하는 수치.
황인범은 조별리그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다. 총 18번의 공격에 참여하면서 이르빙 로사노(멕시코)와 함께 공동 9위를 차지했다. 슈팅 5회, 기회 창출 3회, 슛으로 연결된 빌드업 관여 10회를 기록했다.
독일 조슈아 키미히, 자말 무시알라(이상 29회), 세르주 그나브리(28회),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27회),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 독일 다비드 라움(이상 21회), 스페인 다니 올모(20회), 독일 일카이 귄도안(19회) 등이 공격 참여도 수치에서 황인범과 함께 ‘탑10’에 든 인물이다.
아울러 조별리그 기간 파이널 서드 지역으로 89번이나 패스를 성공시켰다. 이는 스페인 페드리(100회), 아르헨티나 로드리고 데 폴(97회)에 이은 전체 3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만큼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공격적으로 과감한 전진 패스를 뿌리며 한국의 공격 작업을 이끌었다는 의미였다.
벤투호의 황태자는 대체불가가 됐다. 그리고 체격조건과 플레이 스타일 등은 2018년 발롱도르를 수상한 크로아티아 루카 모드리치(37, 레알 마드리드)에 빗댈 수 있다. 한국의 모드리치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팬들은 그를 향해 ‘모드김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황인범의 시선은 브라질과의 16강전으로 향한다. 지난 6월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는 황인범도 고전했고 한국도 1-5로 대패를 당했다.
그는 “황인범은 "브라질과 6월 친선전이 큰 도움이 됐다. 그 경기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다시 붙는다면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각오를 다지면서 “이번 대회만큼은 절대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다. 우리의 간절함을 경기력에 대해 보여주면서 더 끈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16강전 각오를 다졌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