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 그리고 끝까지 달린 벤투호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3일 0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의 알 라이얀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2-1로 승리했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1승 1무 1패(골득실 0, 4득점 4실점)을 기록했고, 가나를 2-0으로 꺾은 우루과이도 1승 1무 1패(골득실 0, 2득점 2실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이 다득점에서 앞서며 극적으로 조 2위를 차지,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였다. 한국은 경기 시작 5분 만에 실점하며 끌려갔지만, 전반 27분 코너킥 상황에서 김영권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췄다. 그리고 후반 추가 시간 손흥민의 패스를 받은 황희찬이 골망을 가르며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냈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16강 진출을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한국이 포르투갈을 꺾는 것부터 문제지만, 우루과이가 가나를 한 골 차 혹은 두 골 차로만 이겨야 한다는 조건도 너무나 까다로웠다. 미국 통계 매체 '파이브서티에잇' 역시 한국의 조별리그 통과 확률은 9%에 불과하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상황은 불리하게 흘러갔다. 한국은 경기 시작 5분 만에 선제골을 내줬고, 우루과이는 전반 20분 가나에 페널티킥을 헌납했다. 그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의 수였다.
여기서 첫 번째 행운이 일어났다. 우루과이의 세르히오 로셰트 골키퍼가 가나의 페널티킥을 완벽히 막아냈다. 가나가 승리할 시 16강 진출이 좌절되는 한국으로서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또 한 번 행운이 따랐다. 전반 27분 코너킥 상황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등으로 공을 받아 김영권 앞에 떨어뜨려 줬다. 그 덕분에 김영권은 몸을 날려 골망을 갈랐고, 동점을 만든 한국은 기적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루과이가 문제였다. 우루과이는 전반 31분 만에 히오르히안 데 아라스카에타가 멀티골을 터트리며 2-0으로 앞서 나갔다. 남은 60분 동안 한 골만 더 득점한다면, 한국이 2-1로 역전한다 할지라도 골득실에서 밀려 탈락하게 되는 위기였다.
하지만 가나도 우리를 도와줬다. 앞서 한국을 울렸던 로렌스 아티-지기 골키퍼가 이날도 미친 선방쇼를 펼치며 우루과이를 좌절시켰다. 게다가 후반 12분 다르윈 누녜스가 박스 안에서 넘어졌지만, 다행히도 비디오판독(VAR) 끝에 페널티킥은 선언되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이 한 골만 넣는다면, 조 2위로 올라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한국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후반 추가 시간 손흥민이 80m 가까이 폭풍 질주한 뒤 수비수 다리 사이로 황희찬에게 패스를 건넸다. 드디어 경기장으로 돌아온 황희찬은 강력한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며 기적을 완성했다.
'알 라이얀의 기적'은 모두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끈끈한 조직력과 서로에 대한 믿음, 그리고 약간의 행운이 더해지며 9%의 실낱같은 가능성은 현실이 됐다. "의지와 멘탈, 팀워크에서는 우리가 더 강하다. 다른 팀보다도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라는 나상호의 말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경기 후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 코치 역시 "(16강 진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있었고,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다 분석했다. 그래서 16강으로 갈 수 있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라며 철저히 준비된 기적이었다고 이야기했다.
황희찬도 "투입 전부터 흥민이 형이 '하나 해줘야 한다. 할 수 있다'라고 얘기해줬고, 투입 후에도 동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해줘서 정말 듬직했다"고 동료들의 믿음 덕분에 골을 넣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원 사령관' 황인범도 똑같은 이야기를 내놨다. 그는 "나를 포함해 아무도 짐을 싸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야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선수들끼리도 많이 이야기했다"라며 "4년간 많은 비판과 비난이 있었지만, 감독님은 꿋꿋이 밀고 나가셨다. 선수들도 끝까지 감독님을 믿었다"라고 밝혔다.
선수들부터 감독, 코치진까지, 벤투호는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믿으며 끝까지 달렸다. 그리고 찾아온 기회를 제대로 움켜쥐었다. 한국은 분명 기적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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