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속담이 있다. '벤투호 살림꾼' 이재성(30, 마인츠)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지난 28일(한국시간) 오후 10시 카타르 알 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가나에 2-3으로 패했다.
이날 한국은 전체적으로 경기를 주도하고도 가나의 효율적인 공격에 연이어 얻어맞았다. 전반 20분까지 몰아붙이던 한국은 전반 24분과 34분 모하메드 살리수와 모하메드 쿠두스에게 실점하며 끌려갔다. 후반 조규성의 멀티골로 동점을 만들긴 했지만, 쿠두스에게 다시 한번 실점하며 무릎 꿇고 말았다.
'중원의 엔진' 이재성이 생각나는 경기였다. 그는 우루과이전에서 왕성한 활동량으로 페데리코 발베르데와 로드리고 벤탄쿠르를 꽁꽁 묶어내며 중원에 안정감을 더했다.
이재성은 이승우 SBS 해설위원에게 "활동량이 '해버지(박지성의 별명)'급이다. 이재성 덕분에 중원 싸움을 잘 버텨주고 있다"라고 칭찬받기도 했다.
이재성 역시 우루과이전 이후 "벤탄쿠르를 주의했다. 그의 패스가 쉽게 안 나가게 하려고 신경썼다. 그래서 우루과이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그게 우리가 경기를 주도한 이유"라면서 "일단 회복하고 가나전을 준비할 것"이라고 만족감과 각오를 동시에 전했다.
그러나 이재성은 가나전 90분 내내 벤치를 지켰다. 벤투 감독은 그와 나상호를 대신해 정우영(프라이부르크)와 권창훈을 선발로 기용했다. 우루과이전에 비해 더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천천히 상대 수비를 공략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결과적으로 벤투 감독의 승부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정우영과 권창훈은 좀처럼 존재감을 뽐내지 못했고, 이재성이 맡던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벤투 감독 역시 정우영과 권창훈을 빠르게 교체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경기 후 세르지우 코스타 대표팀 수석코치는 이재성의 결장에 대해 "전술적 측면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힘을 보탤 수 있는 이재성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특히 벤투호는 이날 중앙 공략 없이 측면 크로스에만 의존했기에 더욱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은 이날 무려 35개의 크로스를 시도해 15번을 성공시켰을 정도로 측면 공격에만 힘을 실었다. 옵타에 따르면 오픈 플레이 상황 크로스 성공 15회는 기록이 남아있는 1966 월드컵 이후 최다 기록일 정도다.
이제 한국은 다음 달 3일 포르투갈과 H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대표팀은 이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만 16강 진출을 꿈꿀 수 있다. 막강한 포르투갈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벤투호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이재성의 살림 실력이 필요할 전망이다.
벼랑 끝에 몰린 위기의 상황이지만, 이재성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는 "지난 2경기에서 잘했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포르투갈전서 우리의 플레이를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라면서 "이번 대회가 끝나면 4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다시 무대에 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후회없이 경기를 준비하고 결과도 챙기겠다. 축제를 즐기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finekos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