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주전은 정해진 게 없습니다.”
KGC인삼공사 고희진 감독은 지난 26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과의 원정경기서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신인 2명을 기용하는 파격 용병술을 선보였다. 승리가 필요했던 신임 사령탑의 데뷔전이자 시즌 첫 경기였지만 신인선수에게 선발 리베로와 5세트 세터라는 중책을 맡겼고, 이는 3-2 승리로 이어졌다.
이날 KGC인삼공사의 선발 리베로는 지난 9월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6순위 지명된 2004년생 최효서였다. 주전 리베로 노란의 수술로 고민지의 선발 출격이 유력했지만 훈련을 거치며 고 감독의 생각이 바뀌었다. 아직 고3 신분인 최효서가 데뷔전부터 만난 상대는 국가대표가 즐비한 IBK기업은행. 그러나 주눅 들지 않고 5세트에 모두 출전하며 리시브 효율 36.36%과 함께 디그도 25개 중 22개를 성공시켰다.
고 감독은 경기 후 “주전은 정해진 게 없다. 훈련 과정에서 좋았던 선수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 최효서가 연습경기와 훈련 때 좋은 모습을 보였다”라며 “주위에서 우려를 많이했지만 뛰었다는 자체만으로 만족한다. 솔직히 최효서는 지금도 고등학생이다. 얼마나 떨렸겠나. 언니들과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잘해줬다. 앞으로 잘할 것”이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최효서뿐만이 아니었다. 고 감독은 승부가 결정되는 마지막 5세트 세터를 또 다른 2004년생 박은지(1라운드 4순위)에게 맡겼다. 이 또한 상당한 파격이었지만 박은지 또한 염혜선을 대신해 과감한 토스를 선보이며 5세트 승리에 기여했다.
고 감독은 “염혜선의 경우 오래했기 때문에 상대가 패턴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고자 제외했다”라고 박은지 투입 배경을 설명하며 “박은지는 연습경기 때 깜짝 놀랐다. 오늘(26일)도 떨어지는 B속공을 (정)호영이에게 밀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그런 과감한 모습이 필요하다. 올해 염혜선, 박은지를 적절하게 잘 쓰면 상대 리듬을 빼앗을 수 있는 운영이 될 수 있다”라고 박수를 보냈다.
KGC인삼공사는 얇은 뎁스가 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팀이다. 선수 숫자는 많지만 승부처 결정력을 갖춘 선수가 항상 부족했다. 사령탑이 바뀌어도 뎁스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2016-2017시즌 이후 5시즌 연속 봄 배구 무대를 밟지 못했다. KGC인삼공사 구단은 이에 리빌딩 적임자인 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고 감독은 시즌 첫 경기부터 신인 2명을 코트에 내보내는 파격 용병술로 무한 경쟁을 시사했다. 경쟁은 뎁스 강화의 필수 조건이다.
고 감독은 “경기는 실력대로 들어가는 게 원칙이다. 그래야만 팀이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고 선수들도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다”라며 “백업이 백업으로 머물면 누구 한 명에게 기대는 팀이 된다. 그러면 위기가 왔을 때 이겨낼 수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KGC인삼공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경력이 아닌 실력 위주의 선수 기용을 통해 뎁스를 강화할 계획이다. 고 감독은 “당장 성적도 중요하지만 주전과 백업 격차를 어떻게 줄일지 고민이다. 그게 돼야 장기 레이스를 끌고 갈 수 있다. 특히 여자부는 선수들에게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다음을 대비해야 한다”라며 “우리 선수들은 준비를 참 많이 한다. 야간에도 훈련하는 거 보면 기특하다”라며 팀의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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