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의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달됐다. 그의 카타르 월드컵 구상에 이강인(21, 마요르카)은 없다.
벤투 감독은 지난달 국내서 개최된 두 차례 평가전을 위해 1년 6개월 만에 이강인을 소집했다. 당시 라리가 도움 1위를 달리고 있던 이강인의 발탁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벤투 감독이 카타르 월드컵을 대비해 이강인의 무엇을 실험할지 관건이었다.
한국이 2-2로 비긴 9월 23일 코스타리카전에서 이강인은 출전기회를 얻지 못했다. 손흥민, 김민재 등 해외파 핵심전력들과 국내파들의 호흡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이강인의 결장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벤투는 9월 27일 1-0으로 이긴 카메룬전에서도 이강인에게 단 1초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후반전 이재성, 나상호, 정우영, 황의조, 백승호 등이 차례로 교체로 투입했지만 이강인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았다. 몸을 풀던 이강인은 결장을 직감하고 다시 외투를 챙겨 입었다.
평가전은 승패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이미 충분히 기량이 검증됐고, 부상여파로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황의조를 넣으면서도 이강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부분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답답했던 현장의 팬들이 “이강인”을 연호하며 그의 투입을 바랐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경기 후 기자회견서 벤투는 “나도 귀가 있다”며 이강인을 외친 팬들의 목소리에 불편함을 호소했다. 감독 고유의 권한인 선수기용에 대해 여론의 압력이 가해지는 것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기 후 이강인은 “당연히 축구선수로서 경기를 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쉽긴 하지만 제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감독의 전술에 맞지 않는다면 경기장에서 뛸 수 없다. 벤투의 뜻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그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이강인을 후반 조커로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최소 카메룬전에서 교체투입을 통해 가능성을 실험해봤어야 했다. 벤투 감독의 행동은 여론에 떠밀려 억지로 이강인을 뽑았지만 그래도 쓰지 않겠다는 메시지 아닌가.
만약 벤투 감독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애초에 평가전에 이강인을 소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벤투 감독의 주장에 더욱 힘이 실렸을 것이다. 이강인 본인이나 팬들이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1년 6개월 만에 대표팀에 차출된 이강인은 희망고문에 시달린 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리그에서 한창 컨디션이 좋을 때 장거리 여행을 했으니 오히려 본인에게 손해였다.
대한축구협회는 다음달 11일 국내서 펼쳐지는 최종평가전에 나설 국내선수 소집명단을 오는 21일 공개한다. 손흥민 등 해외파는 빠지기에 월드컵에 나갈 국내파 선수들의 윤곽을 알 수 있을 전망이다. 이강인에게는 더 이상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없는 셈이다.
카타르에 갈 26인 최종명단은 최종평가전 다음 날 발표된다. 벤투 감독이 어차피 월드컵에서 이강인을 전혀 쓸 생각이 없다면, 다시는 그를 소집하지 않기를 바란다. 벤투 감독의 계약기간은 월드컵과 함께 종료된다. 앞날이 창창한 나이인 이강인 역시 다른 감독이 지휘할 다음 월드컵을 기약하는 편이 낫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