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모하메드 살라는 동갑내기(30) 월드 클래스 골게터다. 빼어난 득점 감각을 뽐내며 세계 으뜸의 프로축구 마당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를 주름잡는다. EPL 역대 득점왕 옥좌에 앉은 경력에서도 뚜렷이 입증된다. 손흥민은 한 번(2021-2022시즌), 살라는 세 번(2017-2018, 2018-2019, 2021-2022시즌) 각각 골든 부트(Golden Boot)를 차지한 바 있다.
둘 모두 팀의 에이스다. ‘대한민국의 아들’ 손흥민은 토트넘 홋스퍼를 대표한다. ‘이집트의 후예’ 살라는 리버풀을 대변한다. 곧, 팀을 웃고 울리는 존재다.
둘은 2021-2022시즌 나란히 득점왕에 올랐다. 그 기세를 이번 시즌에도 이어 가 득점왕 각축전에서 앞서 나갈 듯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시즌 초반, 전혀 뜻밖의 양상으로 전개됐다. 둘 다 조용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양 좀처럼 예의 골바람을 일으키지 못했다.
약속이나 한 듯 닮은꼴 페이스가 엿보인다. 시즌의 ¼ 정도를 소화하면서 차츰 본연의 풍모를 되찾아가는 성싶은 몸놀림을 펼친다.
한데 참으로 공교롭다. 부진을 치유하는 데 쓰인 처방이 똑같다. 약속했을까, 그 묘방은 ‘해트트릭’이다. 약방문에 쓰인 복용 방법도 빼닯았다. 교체 투입 후 무척 빠르게 세 골을 터뜨렸다. 저마다 기록적으로 의미 있는 해트트릭을 완성한 점도 신기할 만큼 일치한다.
구태여 다른 점을 찾는다면 무대가 달랐다. 손흥민은 EPL에서, 살라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각기 ‘인생 경기’를 펼쳤다.
기록적 해트트릭을 디딤돌 삼아 꿈꾸는 반등, 과연 승자는?
손흥민이 먼저 부진 탈출의 신호탄을 쐈다. 지난 9월 17일(이하 현지 일자) 7라운드 레스터 시티전(6-2승·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6라운드까지 무득점의 동면에서 깨어나 크게 기지개를 켰다. 후반 14분 교체 투입된 뒤 불과 13분 사이에 세 골(28·39·41분)을 작렬했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벤치에서 맞이한 경기에서 터뜨린 해트트릭이어서 무척 뜻깊었다.
토트넘 구단 역사상 첫 교체 투입 해트트릭이었다. 1882년 출범한 토트넘이 140년의 오랜 연륜을 쌓는 동안, 지금까지 교체돼 들어가 3골 이상을 뽑은 ‘이적(異蹟)’은 단 한 차례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EPL 전체로 외연을 넓혀도 일곱 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한 기록이기도 했다.
25일 뒤, 뒤질 수 없다는 양 살라도 깨어났다. 지난 10월 12일 UCL 조별 라운드(A) 네 번째 레인저스전(7-1승·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 세 골을 몰아쳤다. 역시 후반 23분 교체 투입돼 아주 짧은 시간인 6분 12초 만에 세 골(30·35·36)을 몰아쳤다. 마찬가지로, 이번 시즌 처음 후반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EPL 8라운드까지 고작 두 골밖에 넣지 못한 상태에서 기록한 해트트릭이라 더욱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기록적으로도 대단하다. 1992년 UCL로 이름을 바꾼 이래 최단 시간에 완성된 해트트릭이다. 2014년 10월 21일 루이스 아드리아누(샤흐타르 도네츠크·7-1승)가 바테 보리소프를 상대로 세웠던 종전 기록(7분 26초)을 8년 만에 1분 14초 능가했다.
1955년 유러피언컵으로 출범했을 때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올라가도 6분 이내에 마침표를 찍은 해트트릭 역사는 단 한 차례밖에 없다. 1978년 9월 13일 클라우디오 술세르(그라스호퍼)가 발레타와 만나(8-0승) 5골을 터뜨렸는데, 이 가운데 3골을 6분(후반 13·17·19분) 사이에 뽑아냈다.
이번 시즌에, 손흥민과 살라는 몸 상태가 괜찮았는데도 종전 골과 맺었던 깊은 연(緣)을 재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행보다. EPL 9경기를 소화한 손흥민은 평균 평점(7.17·이하 후스코어드닷컴 기준)에서 팀 내 4위에 올라 있다. 8경기에 출장한 살라는 팀 내 3위다(7.06). 손흥민이 다소 앞선다.
공격 공헌도도 둘은 똑같다. 손흥민은 3골 2어시스트를, 살라는 2골 3어시스트를 각각 결실해 공격 포인트는 5개로 평행하다.
이제 반전의 실마리는 풀렸다. 둘 모두 기록사적 의미를 띤 해트트릭이라는 강력한 모멘텀을 얻었다. 실제로, 손흥민은 레스터 시티전 이후 4경기(EPL·UCL 각 2경기)에서 2골 1어시스트를 수확하며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살라는 레인저스전 이후 아직 경기가 없었긴 해도 매 시즌 기복 없는 골 사냥을 펼쳤던 점에 비춰 탄력을 받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는 엇비슷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손흥민과 살라다. 그렇지만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철칙이 존재하는 스포츠 세계에서, 끝까지 같은 길을 걷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언젠가는 승패를 가름해야 할 둘이다. 과연 언제쯤 닮은꼴 레이스가 끝나고, 누가 승자의 미소를 띨지 주목되는 귀추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