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일까, 아니면 촛불이 꺼지기 직전 잠깐 밝아짐일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7·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실로 오랜만에 골맛을 봤다. 지난 9일(이하 현지 일자) 어웨이(구디슨 파크) 에버튼전에서, 역전 결승골(2-1승)을 잡아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22-2023시즌 들어 비로소 득점 문을 연 마수걸이 골이다. EPL로 국한하자면, 지난 5월 3일 홈(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2021-2022시즌 35라운드 브랜트퍼드전에서 페널티킥 추가골(3-0승)을 넣은 뒤 5개월 6일 만에 본 골맛이다.
이 한 골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골에 관한 한 각종 세계 기록을 세우며 ‘신계의 사나이’로 불리던 걸출한 골잡이가 부진의 늪을 헤치고 나오는 골로 봐야 할지, 그냥 단순한 일과성 득점으로 봐야 할지 선뜻 단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호날두가 2010년대를 호령한 으뜸의 골잡이였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한 골이라 할 만하다. 본래 좋고 훌륭한 건 비록 상해도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이 한 골이 갖는 기록사적 의미가 남다르다는 점에선,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기념비적 기록 세운 호날두, ‘영원한 맞수’ 메시에게 추월당할 가능성 커
기록사적 측면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에버튼에서 터뜨린 한 골은 분명히 이정표로 아로새겨질 만하다.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클럽 소속으로 수확한 700골은 세계 축구사에서 최초다. 2002년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의 스포르팅 CP에서 프로 1부 무대에 데뷔한 이래 943경기(IFFHS 기준)에서 올릴 결실이다. 경기당 평균 한 골(0.74)에 다가붙는 골 사냥 솜씨는 신기(神技)라 할 정도로 놀라움을 안긴다.
이처럼 신기원을 이루기까지 20년 2일이 걸렸다. 호날두는 데뷔 시즌(2002-2003)인 2002년 10월 7일 모레이렌스전(3-0승)에서 프로 입문 첫 골을 뽑아낸 바 있다.
호날두는 ▲ 리그에서 498골 ▲ 각종 컵대회에서 51골 ▲ 국제 클럽 경기(ICC: International Club Competitions)에서 151골을 각각 거둬들였다(표 참조). 클럽별로 보면, ▲ 스포르팅 CP(2002-2003시즌)에서 5골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3-2004~2008-2009, 2021-2022~2022-2023시즌)에서 144골 ▲ 레알 마드리드(2009-2010~2017-2018시즌)에서 450골 ▲ 유벤투스(2018-2019~2021-2022시즌)에서 101골을 각기 수확했다.
호날두의 뒤를 이어 2위에 자리한 골잡이는 호마리우(브라질·56)다. 호마리우는 22년간(1985~2007)에 걸쳐 691골을 잡아냈다. 4위는 요제프 비찬(오스트리아계 체코슬로바키아·1913~2001년)으로, 24년간(1931~1955년) 활동하며 688골을 기록했다. ‘영원한 황제’로 추앙받는 펠레(82·브라질)는 20년간(1957~1977년)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으며 679골을 결실하며 5위에 자리했다. 위 3명은 이미 죽거나 은퇴해 호날두를 더는 추격할 수 없다.
그러나 호마리우와 함께 2위에 자리한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35)는 양상이 아주 다르다. 이번 시즌 들어 노쇠화 기미가 역력한 호날두와 달리, 메시는 여전히 시들지 않는 기량을 뽐내고 있다. 메시는 ▲ 리그에서 485골 ▲ 컵대회에서 71골 ▲ ICC에서 135골을 제각각 결실했다. 호날두와 격차가 9골에 불과하다.
이번 시즌 메시와 호날두의 페이스를 보면, 판도가 뒤집힐 가능성이 큰 편이다. 이번 시즌에, 메시는 리그에서 5골(7어시스트)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2골(1어시스트)을 엮어 모두 7골을 뽑아냈다. 반면, 호날두는 리그에서 1골과 UEFA 유로파리그 1골(1어시스트)을 묶어 2골에 그쳤다. 메시가 골(7-2)과 어시스트(8-1) 모두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평점(리그·후스코어드닷컴 기준)에서도 하늘과 땅 차이다.
9경기 모두 선발로 출장한 메시가 받은 평점은 8.86점에 이른다. 팀 내 1위는 물론 유럽 5대 리그 최고다. 이번 시즌 경이적 골 사냥 솜씨를 보이는 엘링 홀란(22·맨체스터 시티·8.33점)조차도 메시를 따라가기에 버거울 정도다.
호날두는 어떤가? 이번 시즌 교체 멤버로 전락한 호날두는 7경기(교체 투입 6)에 모습을 나타내며 평균 평점 6.43점을 받는 데 머무르고 있다. 팀 내에서조차 15위에 불과할 만치 초라한 몰골이다.
팀 전력상으로도, 메시가 호날두에 비해 유리하다. 메시가 둥지를 튼 파리 생제르맹은 프랑스 리그 1 선두다. 이에 비해, 호날두가 몸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EPL 5위다. 리그는 물론 각종 컵대회와 ICC에서, 파리 생제르맹이 막강한 전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경기를 치를 가망성이 높다. 당연히 그만큼 골을 낚을 기회가 많은 메시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어쨌든 호날두가 마수 골을 디딤돌로 골 사냥 페이스를 높일지가 이번 시즌을 지켜보는 또 다른 흥미 요소로 떠올랐다. 단순히 지나가는 바람이라면, 호날두는 ‘영원한 맞수’ 메시한테서 역전의 쓴맛을 볼지 모른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