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새로운 기획전시 ‘100편의 소설, 100편의 마음: 『혈의 누』(1906)에서 『광장』(1960)까지’가 9월 8일 막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근현대 명작소설 100편을 엄선, 약 두 세대 동안의 한국 근현대소설 명작들의 ‘첫 모습’인 초판본 희귀 원본 128작품(총 190점)을 만나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내 유일 근대서지학 관련 학회인 근대서지학회와 공동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는 특히 우리나라 첫 소설 앤솔로지인 『현대명작선집』 원고본이 최초로 발굴, 공개됐다. ‘선집(選集)’이라 번역되는 앤솔로지는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 권에 묶은 것을 말한다.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는 1926년에 완성된 『현대명작선집』이다.
이 자료는 ‘선집’을 내기 위해 준비한 친필 원고본이다. ‘탈출기’로 유명한 최서해와 요절한 김낭운 두 작가가 편집한 이 책은 이광수, 염상섭, 김동인, 현진건 등 당대 최고의 소설가 15명의 15작품이 실려 있다. ‘1926년 10월 10일’이라는 날짜가 명기된 서문에는 “소설 선집으로는 이 책이 조선문단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임을 자랑스럽게 알리고 있다.
편자들은 당시까지 나온 작품 가운데 문단의 평판이 가장 높은 작품들만을 엄선했음을 밝혔다. 아쉽게도 실제 출판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최초 소설 선집의 원고본으로 국내 단 한 점만 확인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자료는 당대 출판 정황과 명작의 선정 기준이나 인식의 측면에서 학계의 주목을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는 최초의 신소설인 이인직의 『혈의 누』(1906)부터 전후 한국문학 최대의 명작인 최인훈의 『광장』(1960)에 이르기까지 약 두 세대에 걸친 한국의 명작소설 100편과 근현대소설 앤솔로지 28편을 소개한다.
그동안 시의 경우 한 세기 동안의 근현대 명작 시집을 전시한 적은 있었지만, 소설은 이번 한국근대문학관 전시가 처음이다.
전시 자료가 발표 당시 초판본 원본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가 처음 실린 『만세보』 연재본과 『광장』이 처음 발표된 잡지 『새벽』 연재본 등 우리나라 근현대 소설 관련 희귀자료 총 190점이 전시를 빛낸다.
그 밖에도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작 이상의 ‘날개’ 최초 발표본과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작가 친필 서명본을 비롯해 육당 최남선이 낸 십전총서와 육전소설, 스위스의 독립영웅 빌헬름 텔의 활약을 그린 『서사건국지』 국한문본과 순한글본,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인 『장한몽』 상, 중, 하 전질, 한국 최초의 작가 개인 작품집인 현진건의 『타락자』 초판본(1922), 염상섭의 『만세전』 1924년본과 1948년본, 한국 최고의 역사소설인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일제 강점기 발행(1939) 4권 전질 등 연구자들도 쉽게 볼 수 없는 힘든 희귀 소설자료들이 대거 전시됐다.
또한 우리나라 근현대소설사를 아우르는 이번 전시에서는 여성‧디아스포라 등 상대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작품들의 원본도 만나볼 수 있다.
서양화가 나혜석의 ‘경희’(1918), 김명순의 ‘의심의 소녀’(1917) 같은 여성 문학, 강용흘이 1931년 미국에서 출간한 『 The Grass Roof(초당)』, 이미륵이 1946년 독일 뮌헨에서 발행,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장편소설 『Der Yalu Fließt(압록강은 흐른다)』, 일본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던 김사량의 작품집 『光の中に(빛 속으로)』(1939) 등 근대 여성 문인들의 작품과 해외에서 외국어로 창작, 발표되었지만 식민치하 한국인의 정서를 그린 작품 들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한국 근현대소설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7개의 섹션과 1개의 특별코너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필사체험공간 ‘마음서재’와 MBTI 게임 등 다양한 체험장치도 해놓아 우리 소설의 명작들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게다가 섹션 별로 비치된 미니 도록을 통해 작품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 관람객들이 희귀자료의 ‘첫 모습’을 직접 보면서 재미도 느낄 수 있게 구성했다.
문학관 관계자는 “근대서지학회와 함께 공들여 준비한 전시이다. 100편의 소설이 담고 있는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에 100편 그 이상으로 가닿기를 바란다”면서 “소설사를 구성할 수 있는 희귀 초판본들을 한 자리에서 이 정도 규모로 볼 수 있는 전시는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관람을 강력추천했다.
전시회는 2023년 4월 30일까지 장기간 열리며, 월요일은 휴관이고, 관람료는 무료이다.
이미지 제공=한국근대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