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외과의사가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수술성공률이 95%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술기를 익혀야 한다.”
최근 OSEN과 인터뷰에서 ‘발 박사’ 이경태 원장이 한 말이다. 한 번 익힌 의술이 평생을 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발 박사’로 30년 명성을 이어온 주인공이지만 여전히 지금도 새로운 술기를 익히고 있다고 한다.
이 원장이 ‘발 박사’라로 통하는 데는 '족부 전문'의 외길인생이 배경에 깔려 있다.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이 교수는 족부질환에 대한 연구를 위해 지난 1992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 코넬대와 콜롬비아 대학에서 2년 동안 족부질환에 대한 공부를 하고 1994년 귀국한 그는 을지병원에 국내 최초로 족부클리닉을 개설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 족부질환 치료라는 새로운 전문 영역이 그 때 만들어졌다.
족부클리닉의 개설과 함께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던 각종 발 질환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게 무지외반증이었다. 지금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의학용어이지만 당시만 해도 "내 발이 왜 이러지"라면서 고민한 하던 때였다.
개념도 없던 시절에 시작한 이경태 원장의 무지외반증 수술건수와 수술성공률은 선구자급이다. 지금도 매년 수백건의 무지외반증 수술을 해 내고 있는 이 원장이다.
을지의대 교수(족부정형외과)를 역임한 이경태 원장은 이후 서울 논현동에 ‘이경태 정형외과’ 의원을 개원했다. 온전히 족부(발) 만을 전문으로 하는 개인 클리닉이 문을 열었다. 개원가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한 개인 클리닉이었다. 그 동안의 정형외과는 어깨, 허리, 무릎, 발 등을 모두 치료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경태 원장은 "발이 신체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는 관련 질환을 경험해 본 사람이면 절실히 공감한다"고 말한다.
'족부 전문'은 스포츠의학계를 발판으로 일반인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축구선수다. 박주영 김남일 이천수 이동국의 발이 이경태 원장의 손길을 거쳤다. 야구선수 이용규 이대호 손아섭 김상현, 농구선수 하승진 전태풍, 배구선수 김학민 김요한, 마라토너 이봉주 등이 발 부상을 당한 뒤 이 원장의 치료를 받았다.
이경태 박사는 새로운 전문 영역을 학문적으로 개척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1994년 족부정형외과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후 40여 명의 제자들을 배출했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족부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에도 매진해 현재까지 SCI급 논문 18편을 포함해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 족부족관절 분야와 스포츠의학 분야의 학회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대한족부족관절학회의 회장과 대한스포츠의학회의 회장을 도맡아 이끌었고, 1994부터 지금까지 제주 유나이티드 축구팀 주치의를 맡고 있다. 국립발레단 유니버셜발레단 등의 자문의, LG프로야구팀 주치의를 역임했고 K리그와 대한 핸드볼협회 의무위원회 위원장, 대한 프로농구연맹 KBL 커미션 닥터 등은 현재도 맡고 있다.
98% 이상의 수술 성공률은 자랑한다는 이경태 원장은 "30년 동안 수없이 많은 발 수술을 해왔지만 지금도 성과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 순간 의학은 발전을 멈추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