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전장에 나아가 적군을 기다리는 사람은 편하고, 뒤늦게 전장에 나아가 싸움에 달려가는 사람은 고달프다(『손자병법』 「허실」편).”
기원전 210년, 불사(不死)를 꿈꾸던 진 시황제가 허망하게 눈을 감았다. 이듬해 9월, 진승과 오광이 대택향에서 일어났다. 진 2세 황제 호해의 폭정에 분연히 일어선, 중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농민 봉기였다. 마음뿐이었던 군기(群起)에 처음 지핀 불꽃은 활활 타올랐다. 요원의 불길은 옛 전국 6웅(제ㆍ초ㆍ연ㆍ조ㆍ위ㆍ한) 땅으로 번져 갔다.
스스로 ‘대초(大楚) 장군’이라 부른 진승은 야망을 더욱 부풀렸다. “초를 크게 넓힌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장초(張楚)를 세워 왕위에 올랐다. 효시(嚆矢)의 위세는 대단했다. 무서운 기세였다. 너도나도 그 기염을 본떠 왕을 자처했다. 가히 후(後)전국시대라 할 만했다.
장초의 시대는 짧았다. 그러나 중국사 ‘첫’ 농민국가가 미친 영향은 컸다. 항우와 유방 등의 봉기를 촉발, 결국 진을 멸망시켰다. 한 고조 유방이 통천하를 이룬 뒤 진승에게 시호(은왕)를 달리 내렸겠는가.
최초 또는 처음은 역사에 남는다.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을 기록한 게 역사라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자연스레 선(先)과 일맥이 닿는다.
옛 여러 병법서가 선(先)을 으뜸으로 꼽았음은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선이 최고다. 선을 활용할 수 있는 자는 모든 것을 제대로 꿸 수 있다(『병경백자』)”, “병가는 선수를 쳐야 상대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병뢰)” 등이 강조한 선의 중요성이다.
이 바탕에서 나온 방책이 선발제인(先發制人)이다. 즉, 먼저 출발하여 제압함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묘책이었다. 선발제인의 비결과 묘체를 깨닫는 자가 전쟁의 주도권을 쥐고 쥐락펴락할 수 있다. “선수는 강하고 후수는 재난을 맞는다”라는 격언도 이에서 나왔다. “첫 단추를 잘 끼워라”라는 관용구도 맥을 같이한다.
2020-2021시즌 비롯한 선발제인의 효용, 득점왕 2연패 전망의 긍정적 바탕
손흥민(30·토트넘 홋스퍼)은 내로라하는 월드 스타다. 세계 최고 축구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손꼽히는 걸출한 골잡이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개막(8월 5일·이하 현지 일자)을 눈앞에 둔 EPL 2022-2023시즌 대야망에 불타오른다. 득점왕 2연패를 향한 대장정에 나선다.
손흥민은 2021-2022시즌 EPL 역사에 금빛을 수놓았다. 아시아인 최초로 득점왕에 등극했다. 2015-2016시즌 EPL 마당을 처음 밟은 이래 7시즌 만에 엄청나게 크게 울린 승전고였다.
그런데 그 상서로운 조짐은 2020-2021시즌에 나타났다. 이 시즌에 EPL에 진출한 뒤 처음으로 15골 고지를 돌파했다. 2016-2017시즌부터 네 시즌 잇달아 두 자릿수 득점 고지에 올라서긴 했어도, 이 시즌 처음으로 15골 고지를 넘어서며 잠재했던 득점력을 분출했다.
그리고 이 시즌에, 손흥민은 선발제인의 묘미를 한껏 뽐냈다. 팀당 38경기씩을 치르는 한 시즌의 ¼을 막 넘어선 시점에, 50% 이상의 골 결실을 올렸다. 이 시즌, 손흥민은 37경기에 출장해 17골 10어시스트를 수확했다. EPL 진출 이래 첫 10(골)-10(어시스트) 클럽에 들어가는 눈부신 발자취를 남겼다. 10라운드까지 10경기에 모습을 보이며 9골 2어시스트를 거둬들였다. 일찌감치 득점의 52,9%를, 어시스트의 20%를 각각 결실한 놀라운 초반 기세로 EPL 무대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2019-2020시즌까지 팀이 10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이처럼 대단한 초반 돌풍을 일으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표 참조).
특히, 2라운드 사우샘프턴전은 선발제인의 효용성이 입증된 백미였다. 물경 4골을 몰아치며 ‘손흥민 광풍(狂風)’이 불기 시작했음을 알렸다. 이전까지 한 경기 최대 멀티골이었던 2골의 배를 한꺼번에 터뜨리면서 아시아인 최초 4득점 기록을 EPL 역사에 깊게 아로새겼다. 1992년 새로 출범한 뒤 29시즌의 연륜을 쌓은 EPL 역사에서, 스물여덟 번째로 4골 이상 득점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이었다. EPL 진출의 전·후기를 가른 분수령이 된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한 번 잡은 선점의 형세를 결코 잃지 않았다. 2020-2021시즌 초반의 활화산처럼 용솟음친 기세를 이어 가 2021-2022시즌 기어코 득점왕 고지를 정복했다.
2022-2023시즌에 대비한 프리 시즌 담금질에서도, 손흥민은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4경기에 출장해 2골 3어시스트의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오는 6일 사우샘프턴을 안방(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여 이번 시즌 첫걸음을 떼는 손흥민의 바람이 거세리라 전망되는 배경이다. 더욱이 상대는 선발제인의 제물이었던 사우샘프턴이라, 한결 맹렬한 바람이 될 듯싶다.
먼저 사자후를 터뜨려 상대를 제압함[先聲奪人·선성탈인]으로써 이번 시즌을 파죽지세로 내달릴 손흥민의 모습이 벌써 그려진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