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과 고집은 한 끗 차이다. 파울루 벤투(53) 감독의 선택은 결국 고집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지난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일본과 2022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3차전서 0-3으로 참패했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지난해 3월에 이어 또 한 번 일본에 0-3으로 무릎 꿇으며 일본에 우승컵을 내줬다.
벤투 감독은 조규성과 나상호, 엄원상, 김진규, 권창훈, 권경원, 김진수, 박지수, 조유민, 김문환, 조현우를 선발로 내세웠다. 센터백만 세 명인 파격적인 선발 라인업.
벤투 감독의 생각은 권경원 시프트였다. 그는 이날 권경원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했다. 벤투 감독은 과거 수비형 미드필더 경험이 있는 권경원을 활용해 황인범의 빈자리를 메워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권경원을 비롯해 한국 선수들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권경원은 홀로 고립되며 연달아 후방 불안을 노출했고 권창훈은 최근 K리그에서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몸놀림이었다. 이제 막 부상에서 돌아온 나상호와 박지수 역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결국 한국은 경기 내내 일본의 전방 압박에 고전했고 후반전에만 세 골을 내주며 와르르 무너졌다. 중앙과 양 측면 풀백을 거치는 세밀한 빌드업은 모두 실패했고 급조된 롱볼 전술 역시 효과가 없었다. 이날 벤투호의 유효 슈팅은 0-3으로 뒤지던 후반 송민규의 단 한 개에 불과했다.
짜임새 없던 후방 빌드업 전술은 뒤로 하더라도 벤투 감독의 선수 발탁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이전부터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과 변화를 꺼리는 보수적인 운영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부담 없이 국내파를 테스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가시질 않는다.
벤투 감독은 이번에도 K리그에서 펄펄 날고 있는 주민규 이승우 홍정호 김대원 신진호 등은 뽑지 않았다. 대신 이달 중순 부상을 털고 일어난 나상호 박지수, 그리고 최근 폼이 좋지 않은 권창훈 등 기존에 뽑던 선수들을 재검증했다.
고영준 강성진 김주성 이기혁 등 새 얼굴도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월드컵을 염두에 둔 선택이라 보기는 어렵다. 결국 벤투 감독은 K리그에서 맹활약하는 선수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주기보다는 자신의 입맛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셈이다. 손준호 이상민 황인범 등의 예기치 못한 공백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벤투 감독의 안목이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벤투 감독이 K리그에서 최고 주가를 보이고 있는 선수들을 간과한 대가는 뼈아팠다. 2연속 한일전 0-3 패배.
물론 선수 발탁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고 벤투 감독만의 확고한 기준은 장점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철학에 맞는 선수들을 적절히 뽑는다면 빠르게 전술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을 등지고 내린 벤투 감독의 결단은 실패로 돌아갔다. 벤투호는 일본에 또다시 0-3으로 무릎 꿇으며 결과까지 놓쳤다. 월드컵을 앞두고 무엇 하나 소득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누군가는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들을 먼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일본전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선수를 평가할 때 팀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이 정도면 개인의 실수가 아닌 계속되는 벤투호 자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
선수 개인으로 평가하지 말라고 못 박은 이도, 선수들의 최근 활약을 간과하고 자신의 기준만을 내세운 이도 벤투 감독이다. 결국 고집이 돼버린 그의 확고한 철학이 도요타 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finekos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