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이대성(32, 한국가스공사) 퇴장의 나비효과는 참혹할 정도로 컸다. 한국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뉴질랜드에게 졌다.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은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2022 FIBA 아시아컵 8강전’에서 뉴질랜드에게 78-88로 패해 탈락했다. 종전 아시아선수권 시절을 포함해 한국이 8강에서 탈락한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경기시작 후 한국은 뉴질랜드 선수들의 월등한 체격과 힘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라건아도 골밑에서 밀려나는 장면이 많았다. 심판진도 웬만한 몸싸움에는 파울을 불지 않았다. 적응을 마친 한국은 2쿼터를 23-14로 압도하면서 전반전을 46-40으로 앞섰다. 한국선수들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사소한 장면에서 큰 사건이 터졌다. 2쿼터 상대선수의 공을 뺏은 이대성이 레이업슛을 성공한 뒤 상대와 몸을 부딪치며 신경전을 펼쳤다. 심판이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했다. 이 파울 하나가 엄청난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왔다.
3쿼터 종료 7분 26초를 남기고 한국이 54-48로 리드하는 상황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이대성이 볼핸들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수비자 파울이 선언됐다. 이대성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심판이 곧바로 두 번째 테크니컬 파울을 줬다. 한국팀의 유일한 가드이자 주장인 이대성은 그대로 퇴장당해 라커룸으로 향했다.
추일승 감독은 12명의 로스터 중 가드를 허훈, 허웅, 이대성 세 명만 선발했다. 불행하게도 허웅이 대회 중 코로나에 감염됐고, 허훈은 발목을 다쳐 8강전 출전이 불가능했다. 이대성과 최준용이 경기를 운영해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대성마저 불의의 퇴장을 당했다. 추일승 감독은 가드 없이 빅맨과 포워드만으로 경기를 이끌어 가야했다. 아무리 추 감독이 포워드 농구를 선호해도 가드 없이 농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이대성의 대역을 수행했던 최준용도 상대의 몸에 깔려 발목을 다쳤다. 송교창 역시 상대와 충돌로 잠시 벤치로 향했다. 한국은 라건아, 김종규, 이대헌, 양홍석, 이우석이 코트에 섰다. 기본적인 작전수행은 고사하고 공 운반조차 쉽지 않았다. 수비에서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공격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답답한 라건아가 직접 공을 몰고 치고 들어가거나 외곽슛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경기 종료 1분 36초를 남기고 한국이 74-80으로 뒤진 상황에서 최준용까지 심판에게 항의하다 연속 테크니컬 파울을 지적 받고 퇴장을 당했다. 한국농구가 와르르 무너진 순간이었다.
가드 없는 한국농구는 포수 없는 야구, 쿼터백 없는 풋볼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감독의 작전을 모두 숙지하고 그대로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포지션 균형이 깨져 선수들의 약속된 움직임도 모두 어그러졌다. 한국은 막판까지 포기하지 않았지만 결국 가진 힘을 100% 발휘하지 못하고 아쉽게 패했다.
추일승 감독은 우승팀 SK의 리더 김선형, 슈터 전성현, 빅맨 이승현의 부상, 여준석의 중도이탈로 선수구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최준용과 이우석이 가드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판단에 가드를 세 명만 선발했다. 하지만 가드 세 명에게 모두 불의의 사고가 터지면서 추 감독은 당초 구상했던 농구를 해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한국농구가 예선 세 경기서 충분히 좋은 경기력과 경쟁력을 보여줬기에 뉴질랜드전 패배는 더 아쉽게 다가온다.
한국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월드컵 예선 불참으로 내년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에서 열리는 농구월드컵 출전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대로라면 한국대표팀은 내년 9월 아시안게임까지 A매치가 없다. 한국농구가 더 발전할 수 있는 시점이지만 기회가 없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