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세가 변했다. 노장과 연부역강한 장수가 서로 힘을 겨루던 모습이 아니다. 노익장을 뽐내는 기세에, 젊은 장수들이 빛을 잃어 간다. 세월의 흐름을 거부하는 듯, 의욕이나 기력은 오히려 점점 좋아지고 있음이 뚜렷하게 엿보인다. 노장이 이끌어 가는 국제 경기 득점 회전(會戰)이다.
2022년 상반기(1~6월), 세계 축구의 기류가 심상찮다. 적어도 국제 경기에서 나타난 득점 파워를 보면 역력하게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이다. 정상을 밟기 위해 팽팽한 힘겨루기를 펼치는 양웅(兩雄)은 믿기 힘들지만 모두 30대다.
그 주인공은 카림 벤제마(35·레알 마드리드)와 사디오 마네(30·바이에른 뮌헨)다. 우리 나이로 서른여섯 살과 서른한 살이다.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축구 경기에선, 한창때를 넘긴 연식(年食)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수비수들의 거친 견제를 뚫고 골을 터뜨려야 하는 골잡이에겐, 환갑을 지났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올 상반기 국가대표팀 간 경기와 클럽 국제 무대에서 발휘한 득점력을 보면 둘이 1~2위를 달리고 있다. 내로라하는, 넘치는 패기를 앞세운 젊은 골잡이들을 무색하게 하는 골 사냥 솜씨다. 회춘한 듯한 두 빼어난 골잡이는 한결같이 부르짖는다. “노장이라 부르지 말아 다오.”
회춘한 30대 노장들의 노련미에 연부역강 20대 패기 맥을 못 춰
지난 4월까지만 하더라도 올 국제 경기 득점 레이스 양상은 지금과 달랐다. 그때엔 30대와 20대의 겨룸이었다. 벤제마가 변함없이 30대를 대변하는 선봉장이었다면, 한판 격돌을 노리며 맞선 상대 장수는 20대 후안 이그나시오 디네노(28·푸마스 UNAM)였다.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가 집계한 이 부문에서, 똑같이 9골로 한 치도 물러섬 없는 맞섬이었다.
둘 모두 클럽 대항 국제 대회에서 기염을 토했다. 벤제마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디네노는 CONCACAF(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맹위를 떨쳤다. A매치에선, 둘 모두 골맛을 보지 못했다. ‘푸른 군단(Les Bleus: 프랑스 국가대표팀 별칭)’ 일원인 벤제마와 달리 멕시코 국가대표팀 멤버가 아닌 디네노는 애초에 A매치에서 골을 사냥할 기회가 없었다.
그때로부터 2개월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을 변화가 뒤따르며 한바탕 요동쳤다. 격변의 주역은 마네였다. 이무기인 듯 보였던 마네는 골 폭풍을 일으키며 용으로 화했다.
지난 4월 말 마네의 순위는 하찮았다. 5골로 18위에 지나지 않았다. 공동 선두를 달리던 벤제마와 디네노의 절반가량의 골 수였다.
그랬던 마네가 확 달라졌다. 잠재하던 득점력을 분출했다. 10골, 정확하게 두 배의 골을 터뜨렸다. 세네갈 국가대표로 7골, ‘더 레즈(The Reds: 리버풀 별칭)’로 3골을 각각 기록했다. 순위도 치솟았다. 단숨에 2위로 뛰어올랐다(표 참조).
‘백전노장’ 벤제마는 여전히 힘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페이스는 약간 떨어졌지만, 변함없이 선두를 지켰다. ‘페널티 지역의 제왕’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한결같은 득점 파워를 뽐내고 있다. 4월 말에 비해 2골을 추가한 11골이다. UEFA 네이션스리그와 UCL에서 각각 한 골씩을 더했다.
벤제마는 30대에 들어서서 더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가는 세월을 부정한다. 기록으로도 입증된다. 프로 무대에서, 벤제마는 2021-2022시즌까지 18시즌을 뛰놀았다. 이 가운데 30골 이상을 터뜨린 시즌은 다섯 번인데, 그중 세 번(2018-2019·2020-2021·2021-2022 시즌)은 30대에 기록했다. 반면, 한창 젊음을 구가하던 20대 시절은 두 번(2007-2008·2011-2012 시즌)이었다.
격렬한 경기인 축구에선, 20대 후반에 들어서면 나이와 득점이 반비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벤제마가 그리는 득점 곡선은 그 반대다. 이채롭다 아니 할 수 없다.
마네는 지난 6월 말 독일 분데스리가의 최강 바이에른 뮌헨으로 둥지를 옮겼다.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력은 자타가 인정한다. 이에 힘입어 편안하게 골 사냥에 나설 마네의 득점력은 한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레 올 후반기 국제 경기 득점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불타오를 듯싶다. 아울러 벤제마와 마네가 대표하는 30대 골잡이들의 질주가 20대 골게터들의 도전을 뿌리치고 계속될지도 지켜볼 만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