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가 대통령보다 유명하고 농구가 종교인 나라가 있다. 바로 농구가 국기인 필리핀이다.
다음 시즌부터 KBL에서 필리핀 PBA와 아시아쿼터제도를 전격 시행한다. 국가대표팀에서 기량을 과시한 필리핀 선수들이 대거 KBL 구단과 계약을 맺었다. 한국에서도 필리핀농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과연 필리핀에서 농구는 얼마나 인기가 있을까? OSEN이 필리핀 마닐라로 날아가 PBA컵을 취재했다. 윌리 마르시알 PBA 총재의 도움으로 29일 마닐라 스마트 아라네타 콜로세움에서 개최된 2022-23 필리핀 PBA 컵 경기를 취재했다.
올해로 42번째 시즌을 맞은 PBA는 전세계에서 NBA 다음으로 오래 된 프로농구리그다. 총 12팀으로 구성됐다. 필리핀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농구를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경기가 시작하기 한 시간 전인데 입장권을 구매하는 팬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NBA 유니폼이나 농구화를 신은 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입장권은 가장 싼 좌석이 40페소(941원)고 가장 비싼 좌석이 635페소(약 1만 5천원)까지 다양했다. 필리핀의 물가를 고려하면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상업지구에 위치한 아라네타 콜로세움은 유동인구가 많았다. 인근 상가에도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출입구에 총을 갖고 입장하지 말라는 표시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라네타 콜로세움 입구에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코비는 생전에 6번이나 필리핀을 방문할 정도로 필리핀 팬들을 사랑했다. 코비의 사진을 보면서 기도를 하는 팬들도 있었다. 코비가 사망했을 때 많은 팬들이 애도했다. 필리핀 취재진은 “대통령은 몰라도 코비를 모르는 필리핀 사람은 없다”고 했다.
경기장에 출입하는 모든 인원은 즉석에서 코로나 검사를 통과해야 했다. 기자도 코로나 검사를 받은 뒤 10분 기다렸다가 입장할 수 있었다. 경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다들 반가워했다. “이현중은 NBA 드래프트에서 어떻게 됐느냐?”며 한국선수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1960년 개장한 아라네타 콜로세움은 1만 6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경기장이다. 다만 경기장 내부는 낡은 구장의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경기장내에 기자석이 따로 없었다. 조명도 너무 어두워 사진촬영이 쉽지 않았다. 농구에 꼭 필요한 24초 계시기나 대형전광판 등은 최신식으로 갖춰놓고 있었다.
평일 오후 3시에 경기가 열려 생각보다 관중이 많지 않았다. 그 시간에 생업을 포기하고 농구구경을 올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국내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는 PBA컵 대회는 다른 대회에 비해 관심이 떨어졌다. 하지만 경기장에 온 팬들은 대단히 열정적이었다. 슈팅이 나올 때마다 관중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졌다. 남녀노소 팬들이 고르게 분포한 것도 큰 특징이었다. 젊은 여성팬들도 많이 보였다.
필리핀 프로농구는 연고지가 따로 없고 한 경기장에서 여러 팀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된 오후 5시가 되자 5천명 정도의 관중이 모여서 경기를 관람했다.
필리핀농구는 NBA처럼 1쿼터 12분이다. 경기내용도 NBA저리가라 할 정도로 빠르고 흥미진진했다. 거의 모든 공격권에서 속공과 일대일로 경기를 풀었다. 2대2 농구조차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격을 선호했다. 일대일 공격을 못하는 선수가 아예 없을 정도로 다들 개인기와 운동능력이 뛰어났다. 빅맨은 한 팀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했고 포스트플레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제임스 하든 10명이 5대5로 뛰는 농구라면 설명이 될까. 전반전이 끝나자 두 팀 점수가 55-55였다.
2021년 챔피언 TNT팀에는 과거 필리핀 국가대표로 한국과 여러 번 상대해 얼굴이 익숙한 선수들이 많았다. 켈리 윌리엄스, 윌리엄 제이슨 카스트로 등이 여전히 현역으로 뛰며 스타성을 과시했다.
경기는 117-112로 TNT가 노스포트를 이겼다. 필리핀 국가대표팀 슈터인 로저 포고이가 3점슛 4개 포함 22점을 올려 수훈선수가 됐다. 마이클 윌리엄스는 27점으로 최다득점을 올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기 후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특이한 점은 한국과 달리 모든 장면이 TV에 생방송으로 중계됐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농구에 대한 필리핀의 관심이 엄청나다는 반증이다. 뉴미디어 시대에 맞게 기자들도 모든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고 중계했다.
PBA 총재는 “결승전 등 관심이 많은 경기는 수천만 명이 시청하기도 한다. 필리핀에서 농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생활이고 종교다. 사람이 종교와 물 없이 살 수 있나? 필리핀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며 농구사랑에 대단한 자부심을 보였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마닐라(필리핀)=권경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