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부터 전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글로벌 게임-e스포츠 시장은 크게 변화했다. 팬데믹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집합 제한’ 움직임으로 모든 대회는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 등 대부분의 글로벌 e스포츠 대회는 온라인 또는 버블(외부 위험요소를 차단하기 위해 관계자만 입장하는 형태)로만 열렸다.
그간 관람객 출입이 철저하게 제한됐던 e스포츠 대회는 코로나19의 유행 감소세로 ‘유관중’ 전환을 도모했다. 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간)부터 19일까지 나흘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배틀그라운드’ 국가대항전 ‘2022 펍지 네이션스 컵(PNC)’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관중’ e스포츠 국제전의 스타트를 끊었다.
2022 PNC는 오랜만에 현장 관람객을 찾은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2022 PNC의 총 관람객은 약 2만 600명으로, 나흘 간 평균 5000명이 현장을 찾았다. 중국을 제외한 4개 권역의 온라인 UV(고유 시청자)는 약 110만 명이다. 2022 PNC 굿즈 매출은 온라인, 오프라인(현장) 도합 10만 3325달러(약 1억 3400만 원)를 올렸다.
▲상당한 열기의 2022 PNC 현장… PC방 분위기는 어떨까
2022 PNC의 역대급 흥행은 정확한 수치가 나오기 이전부터 예측할 수 있었다. 그만큼 태국 현지 팬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크래프톤은 오후 1시부터 주경기장인 아이콘시암몰 트루아이콘 홀 밖의 로비 공간(수랄라이 홀)에 ‘배틀그라운드’ 관련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는데, 부스는 개막전 오픈 당시부터 엄청난 관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관람객들은 각종 콘텐츠를 즐기면서, 게이밍 기기를 체험하고 구매했다.
PC에 관심이 지대한 태국 관람객을 바라보며 OSEN은 게임-e스포츠 산업의 근간 중 하나인 PC방의 분위기를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PC방 문화’는 많은 e스포츠 업계 관계자들이 주목했던 현상이다.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LOL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PC방’은 유망주들의 요람으로 평가 받았다. 개인 PC 보급률이 높아져도 여전히 PC방은 MZ세대의 소통 공간으로 남아있다.
PC방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현지 전문가에게 태국의 PC방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크래프톤에서 태국 운영을 총괄한 ‘준키’ 타나폴 콩릿 PM은 PC방 산업 자체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봤다. 준키 PM은 “개인 PC 사양이 올라가고, 이용 금액이 부담이 돼 PC방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구글 맵을 켜보니 ‘임시 휴업’으로 표기된 PC방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운영하는 PC방 중 특유의 ‘문화’를 지닌 PC방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기자가 방문한 PC방은 대회가 열린 아이콘시암몰과 약 21km 떨어진 ‘왕통랑’ 지역에 있었다. 주변에 람캄행 대학교가 있어 방콕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다. PC방은 서너 곳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1시간 이용권을 구매하기 전에 PC방을 둘러봤다. 처음 보는 게임 화면을 지나치다 익숙한 모니터에 발걸음을 멈췄다. 라이엇 게임즈의 신작 FPS ‘발로란트’를 열정적으로 임하는 이용자가 있었다. ‘배틀그라운드’도 발견했다. 서로 짧은 영어로 카운터에 있는 직원과 대화를 나눠봤다. 직원은 태국에서 인기있는 게임으로 ‘발로란트’ ‘배틀그라운드’ 등을 언급했다.
자리에 앉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게임 메뉴에 다양한 한국 게임들이 눈에 띄었다. 넥슨의 ‘V4’를 포함해 ‘리니지W’ ‘스페셜포스’ ‘검은사막’ ‘배틀그라운드’ ‘로스트아크’ ‘세븐나이츠2’ 등이 ‘인기 게임’ 목록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배틀그라운드’를 실행해 플레이 해보니 한국의 환경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태국의 인터넷 속도는 동남아시아 국가 기준 최상위권에 속한다.
PC방 내 비어있던 자리는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채워졌다. 1시간의 플레이 시간을 끝내고 돌아와서 알았지만 해당 PC방은 각종 아마추어 대회가 열리는 장소다. 방송 스튜디오도 모두 갖춰져 있다. 태국도 한국과 비슷한 ‘PC방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태국의 e스포츠 대한 관심 “한국과 비슷해”
게임과 e스포츠는 밀접한 관계다.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e스포츠를 활용하며, 선순환의 고리만 만들어 낸다면 게임과 e스포츠는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관광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태국의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은 편이다. 태국 정부에서 e스포츠 부서를 직접 만들 정도로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태국에서 e스포츠가 정식 프로 스포츠로 인정된 바 있다.
태국의 투자는 지난 5월 열린 ‘제31회 동남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성과를 냈다. ‘제31회 동남아시아 경기대회’는 지난 5월 12일부터 5월 23일까지 베트남 하노이를 포함, 북부지방 11개 지역에서 진행됐다. 총 40개 종목에서 526경기의 메달을 두고 경쟁했는데, 태국은 ‘아레나 오브 발러’ ‘피파온라인4’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참가국 중 e스포츠 부문 3위다.
준키 PM은 “e스포츠 산업이 태국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맞다. 정부에서 직접 부서를 별도로 만들 정도로 디지털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며 “부모님들의 e스포츠에 대한 인식도 좋다. 정부, 가정에서 모두 자라나는 학생들이 e스포츠를 한다고 하면 응원한다”고 밝혔다.
한국도 자식들이 “게임하러 간다”고 하면 꾸짖던 과거와 다르게 부모들이 직접 자녀의 손을 잡고 학원에 방문하기도 한다. 현지 ‘PC방 문화’를 포함, 게임-e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는 만큼 몇년 뒤에는 태국에서 제2의 ‘페이커’ 이상혁을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lisc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