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냉정할 때다. 황선홍호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장기 플랜’이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지난 19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막을 내린 ‘202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에서 ‘8강 탈락’ 성적표를 작성했다.
한국이 이 대회 4강 진출에 실패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별리그 C조를 2승1무, 조 1위로 통과한 한국은 8강에서 일본을 만나 0-3으로 졌다. 한일전 대패로 한국이 탈락하면서 팬들의 실망감은 배가 됐다.
저조한 성적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황선홍 감독에게 향했다. ‘전술 없는 전술’을 한일전에 내세웠단 이유에서다. 황선홍 감독은 풀백 김태환(22, 수원삼성)을 윙어로 기용하고 수비형 미드필더 없이 공격형 미드필더 3명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다.
여기에 몸 컨디션이 좋은 조영욱(23, FC서울)과 일본 리그에서 뛰는 오세훈(23, 시미즈에스펄스)을 벤치에 앉히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박정인(22, 부산아이파크)을 기용했다. 경기 전부터 의문을 산 선발 구성은 결국 악수가 됐다. 후반에 황선홍 감독은 수비형 미드필더 권혁규(21, 김천상무)를 투입시키고 조영욱과 오세훈을 내보냈지만 경기를 뒤집지 못했다. 전반 1골, 후반 2골을 내주며 일본에 무릎을 꿇었다.
황선홍 감독은 경기 후 “나의 잘못이다. 나만의 생각으로 미드필드진을 운영한 것이 패착으로 이어졌다”고 변명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한국의 기대 이하 성적 원인에 전술적 오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황선홍 감독이 팀을 제대로 꾸릴 여건이 충분하지 않았다. 계약 조건부터 황선홍 감독에게 ‘조급함’을 짊어지게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9월 황선홍 감독의 선임 소식을 전하면서 “계약 기간은 2024년 파리 올림픽 본선까지로 하되, 2022년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중간 평가를 거쳐 계약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황선홍 감독이 체감하는 계약 기간은 1년인 셈.
파리올림픽을 염두하고 선임된 황선홍 감독이지만 2년 앞을 내다보고 팀을 꾸릴 수 있는 환경이 처음부터 형성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여기에 지난 5월 아시안게임 연기가 확정되면서 황선홍 감독은 이번 U23 아시안컵 대회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임팩트 있는 성적을 남겨야 했다. 조급함이 알게 모르게 자리하니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에 가까웠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열린 이번 대회 예선전(3전전승) 이후 공식전 한 번 없이 우즈베키스탄 땅을 밟았다. 3월 두바이컵 참가를 희망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불발됐다. 대회 직전 수비수 이한범(20, FC서울)을 부상으로 잃고, 미드필더 엄원상(23, 울산현대)은 A대표팀으로 보냈다. 얽히고설킨 차줄 관련 문제는 이보다 더 많다. 전력이 온전하지 못한 팀에 조급함까지 더해지니 좋은 성적은 너무 높은 목표였다.
똑같이 파리올림픽을 목적지로 둔 일본(3위)과 우즈베키스탄(2위)은 이번 대회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심지어 두 팀은 U23세 대회에 U21 대표팀을 내보냈다. 목표를 이번 대회가 아닌 2년 뒤 열리는 파리올림픽으로 정확히 설정한 것이다. 조급하기보다는 ‘팀을 꾸리는 과정 중 일부’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두 팀을 호성적으로 이끄는 데 지분이 없지 않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즈베키스탄 언론 담당 총책임자 데브론 파이지예프(39)는 지난 16일 OSEN과 인터뷰에서 “최종 종착지는 2024년 파리 올림픽이다. 그렇기에 설령 (우즈베키스탄 사령탑) 티무르 카파제 감독이 U23 아시안컵에서 실패한 성적을 거둔다 하더라도 올림픽을 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에 대한 축구협회의 믿음은 크다”고 들려줬다.
이러한 강한 믿음은 카파제 감독에게 큰 자신감을 준다. 카파제 감독은 18일 OSEN과 만나 "(파리 올림픽까지 시간적 여유를 준) 협회의 믿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삼고 자신감을 가지고 팀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일본도 오이와 고 감독을 지난해 선임할 때 “파리 올림픽까지 함께 간다”고 완전히 못박았다. 3월 두바이컵 정상을 차지한 일본은 당시 우승 멤버의 약 ⅔를 그대로 이번 U23 아시안컵에 데려와 ‘3위’ 성과를 냈다.
4강전에선 우즈베키스탄에 0-2로 패한 뒤 오이와 감독은 “우승하러 대회에 임했지만, 이번 경험이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목적지가 명확하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장기 플랜’을 가지고 있는 팀은 확실히 마인드부터 다르다. 선수단의 동기부여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령탑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확신으로 선수들은 감독이 주문하고 팀이 원하는 방향을 더 잘 흡수한다. 신뢰를 받고 있는 감독이 앞에서 잘 이끌어주고 선수들은 뒤에서 잘 따라오니 팀이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은 당연하다.
멀리 내다보고 있는 팀들은 벌써 앞서 나가고 있다. 황선홍호에 당장 필요한 것은 '장기 플랜'이다. /jinju21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