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황의조-정우영, 벤투의 행복한 미소를 자아내다[최규섭의 청축탁축(淸蹴濁蹴)]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22.06.16 06: 54

변함없는 기세다. 오히려 더욱 세차진 느낌이다. 마치 내려오는 길을 잃은 양 치올라갈 뿐이다. 정점을 밟을 그 날까지 애오라지 상승 곡선만 그릴 듯한 형세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손흥민(30·토트넘 홋스퍼)이다.
비로소 침체의 늪을 헤쳐 나왔다. 언젠가부터 태극 유니폼만 입으면 작아졌다. 위상도 흔들렸다. 부동의 플랜 A 원 톱으로 자리매김했던 시절을 기억하기조차 힘들었다. 마침내 골과 맺었던 연(緣)을 되살렸다.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 낸 ‘벤투호 황태자’ 황의조(30·지롱댕 드 보르도)다.
뛰어난 자질이 엿보였다. 약관(弱冠: 20세)을 갓 벗어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벤투호에 승선했다. 국가대표 발탁 첫해 트였던 싹은 이제 꽃봉오리를 맺어 가고 있다. 꽃이 핌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시나브로 거듭나며 개화를 눈앞에 둔 ‘작은’ 정우영(23·프라이부르크)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국가대표팀이 2022 카타르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에 대비한 모의고사를 치렀다. 지난 2일부터 나흘 간격으로 14일까지 치른 6월 A매치 4경기에서, 손흥민-황의조-정우영은 공격 트리오로서 두드러진 인상을 남겼다. 손흥민은 여전히 중천에서 빛났고, 지는 듯했던 황의조는 다시 떠올랐으며, ‘샛별’ 정우영은 중공(中空)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결같은 손흥민, 부활한 황의조, 거듭나는 정우영
손흥민은 역시 대체불가의 핵심 존재였다. 이번 A매치 4연전에서, 세계 으뜸의 축구 마당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평정(득점왕)하며 닦은 능수능란한 플레이는 단연 돋보였다. 번갯불이 번쩍거리는 듯한 질주, 강력한 슈팅력, 정확한 킥은 그라운드를 꿰뚫어 보는 시야와 어우러져 팬들을 열광케 했다.
손흥민의 활약상은 객관적 기록에서 그대로 배어난다. 9개월여에 걸쳐 펼쳐진 2021-2022 EPL 대장정에서 쌓인 피로를 풀 틈도 없이 벤투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소화했다. 후반 추가 시간(90+2분)에 교체돼 물러 나온 칠레전(2-0 승리)을 빼고 전 시간을 가동했다. 사실상 4경기를 쉼 없이 뛰었다.
손흥민은 EPL 득점왕답게 빼어난 득점력(2골)도 뽐냈다(표 참조). 칠레전과 파라과이전(2-2 무승부)에서 뽑아낸 2골 모두를 환상적 프리킥 골로 터뜨려 팬들의 탄성과 함께 환호와 갈채를 자아냈다. 한국 국가대표팀이 치른 역대 A매치 사상 초유의 진기록이어서, 더욱 묘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대목이었다. A매치 100경기 출장의 기념비적 한판이었던 칠레전에서, 프리킥 골로 센추리 클럽 가입을 자축하기도 했다.
손흥민은 주장으로서 본보기로 삼을 만한 몸놀림을 펼쳐 한결 높게 평가받았다. 늘 “태극 마크를 달고 국위를 선양하는 데 앞장서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임이 자랑스럽다”라고 진솔한 심정을 밝혔듯이, 이번 4연전에서도 온 힘을 쏟아붓는 플레이로 팬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발을 절뚝이면서도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황의조는 다시 비상의 나래를 폈다. 날개를 접어 버린 양, 1년 동안 국가대표팀 둥지에서 잔뜩 움츠러들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기록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반전의 모양새다. 태극 전사 가운데 수확량(2골 1어시스트)이 제일 많았다. 장기인 헤더는 물론 뛰어난 발재간을 두루 갖춘 데서 비롯한 결실이었다. 세계 최강 브라질전(1-5)에서 독특한 피니시 슈팅으로 골을 터뜨렸고, 이집트전( 4-1 승리)에선 헤더로만 1골 1어시스트를 거둬들였다.
벤투호에선, 362일 만에 맛본 골이었다. 지난해 6월 5일 2022 월드컵 2차 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5-0 승리)에서 2골을 터뜨린 뒤 9경기에서 득점포가 침묵했던 황의조였다. 이 가운데 8경기가 최종 예선이어서, 벤투호의 고민은 무척 깊었다.
더구나 황의조가 소속 팀에선 맹활약하던 시기여서,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리그 1 2021-2022시즌, 황의조는 팀 내 최다 경기(32경기)와 시간(2,526분)을 소화하며 최다 득점(11골)과 최다 공격 포인트(13)를 기록할 만큼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다.
정우영은 나날이 다달이 성장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지난해 3월 25일 친선 일본전(0-3 패배)에서 국가대표로 데뷔한 신예에 가까우나 1년 3개월 만에 주전급으로 도약한 상승세가 놀랍다. 그라운드를 폭넓게 누비는 왕성한 활동량이 눈에 띄는 강점이다. 자연스레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벤투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고 있다.
정우영이 다목적 카드로 떠오르면서, 벤투 감독은 중원과 공격 일선에서 다양한 플랜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손흥민-정우영 조합은 합격점을 받았다. 손흥민을 원 톱으로 올리고, 정우영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진시킨 파라과이전, 그리고 손흥민과 황의조를 투 톱으로 세우고 정우영을 왼쪽 윙어로 배치한 이집트전 모두 활용도가 높은 전술로 받아들여졌다. 정우영은 파라과이전에선,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 시간( 90+3분) 극적 동점골을 터뜨려 단숨에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벤투호는 오는 7월 19일부터 27일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2022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에 출전해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 대비한 2차 모의고사를 치른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중국·홍콩이 자웅을 겨룰 이 대회에서, 손흥민-황의조-정우영이 또 어떠한 몸놀림으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을지 기대된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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