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아들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 따위는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된 것처럼 같거나 비슷하다. 이 같은 부전자전(父傳子傳)은 어버이의 성격, 체질, 형상 따위의 형질이 자손에게 전해지는 과학적 현상으로 유전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 멘델이 처음으로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스포츠계에서, 부전자전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물론 할아버지까지 3대가 대물림해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한 예도 적잖다. 대표적 예로,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로서 모두 A매치 골을 기록한 귀드요흔센 3대를 꼽을 수 있다. 할아버지 아르노르→ 아버지 에이뒤르→ 손자 스베인 아론은 아이슬란드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 가족이다. 아르노르와 에이뒤르는 1996년 4월 벌어진 아이슬란드-에스토니아전에서 부자가 함께 뛴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평정하며 세계적 골잡이로 우뚝 선 손흥민(토트넘 홋스퍼)도 부전자전의 한 보기다. 아버지 손웅정 씨는 일화 천마(이하 당시)의 원년(1989년) 멤버로서 활약하다가 은퇴한 뒤 기본기 습득에 주안점을 둔 교육 방법으로 손흥민을 가르쳐 오늘날을 있게 한 지도자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 정상권을 수놓을 차범근-두리 부자 기록
그렇다면 한국, 아니 나아가 세계 축구 최고의 대물림을 뽐낸 아버지와 아들은 누구일까? 객관적 평가인 기록을 토대로 살펴봤을 때, 으뜸은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 부자다. A매치 출장 기록을 평가 기준으로 삼았을 때, 다름 아니라 그 주인공은 차범근-두리 부자다.
1980년대 서독 분데스리가를 풍미했던 ‘황색 폭격기’ 차범근과 2000년대 한국 국가대표팀 부동의 오른쪽 풀백이었던 ‘차미네이터’ 차두리 부자는 당당히 정상에 올랐다. 아버지는 130경기(이하 트랜스퍼마크트 기준)에서, 아들은 74경기에서 각각 태극 마크를 달고 A매치를 소화했다. 합계 204경기다(표 참조).
약관(弱冠·20세)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된 차범근은 1972년 5월 7일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이라크전(0-0 무승부)에서 데뷔하며 자신의 시대가 막을 올렸음을 알렸다. 14년 뒤, 1986년 6월 10일 FIFA(국제축구연맹)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전(2-3 패배)에서 한국 대표로서 막을 내렸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 4강 위업에 한몫했던 차두리는 2001년 11월 8일 세네갈을 상대로 한 친선 A매치(0-1 패배)에서 데뷔 무대에 올랐다. 묘하게도 아버지처럼 14년 뒤, 2015년 3월 31일 마지막 무대에 나섰다. 역시 친선 A매치로서 상대는 뉴질랜드(1-0 승리)였다.
트랜스퍼마크트가 집계해 내놓은 차범근 부자 A매치 최다 출장 기록은 대한축구협회(KFA) 집계치와 약간 다르다. KFA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차범근은 136경기로 홍명보와 함께 한국 축구 A매치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차두리는 76경기로 이 부문 40위다. 만일 KFA 기록을 따른다면 부자 합계 212경기로, 트랜스퍼마크트 기록을 훨씬 웃돈다. 8경기 더 많다.
덴마크의 슈마이켈 부자가 차 부자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아버지 페테르가 121경기를, 아들 카스페르가 82경기를 각기 소화했다. 합계 203경기로, 차 부자에 불과 한 걸음 차다. 부자 모두 덴마크 국가대표팀 골문을 굳게 지키며 당대의 명수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아버지는 1987~2001년 활약했고, 아들은 현 국가대표다.
범근-두리, 페테르-카스페르 두 부자만이 출장 합계에서 200고지를 넘겼다.
전술한 귀드요흔센 부자는 5위에 자리했다. 3대 대물림의 선조 격인 아르노르가 73경기에, 그 아들 에이뒤르가 88경기에 각각 나섰다. 합계 161경기로, 코스타리카의 알렉산드레 기마라에스(16경기)-셀소 보르헤스(145경기) 부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1위 차 부자와 2위 슈마이켈 부자가 그린 두 봉우리 구도는 쉽사리 깨지지 않을 듯싶다. 3~10위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데다가 이들 나머지 부자 대부분이 은퇴해 순위가 요동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곧, 차범근-두리 부자가 세운 기록은 오랜 세월 정상권에서 빛을 내뿜을 듯싶다.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