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의 폭스바겐그룹코리아는 산하 브랜드사 사이에서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룹의 조직 구조로는 분명 폭스바겐그룹을 대변하는 한국법인이지만 실질적인 세일즈는 폭스바겐코리아, 아우디코리아 같은 산하 브랜드사들이 주도적으로 시행해 왔다.
그런데 폭스바겐그룹이 기억하기 싫은 디젤게이트 이후 우리나라에 와 있는 폭스바겐그룹코리아와 산하 브랜드사들의 위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에서 폭스바겐코리아, 아우디코리아가 사라지고 폭스바겐그룹코리아 산하 폭스바겐 부문, 아우디부문으로 불렸다. 벤틀리와 람보르기는 처음부터 부문이기는 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소비자들로부터 이름이 너무 번거롭다는 불만이 제기되자 소비자들의 귀에 익은 아우디코리아, 폭스바겐코리아로 다시 돌아갔다. 그렇다고 해서 아우디코리아가 독립법인이 된 것은 아니다. 법인은 여전히 폭스바겐그룹코리아 단일법인이고 그 아래 폭스바겐, 아우디, 벤틀리, 람보르기니 부문이 자리잡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 지는 독일의 폭스바겐그룹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최근 폭스바겐그룹은 내연기관차를 파는 세일즈 기업에서 미래 모빌리티 환경을 제공하는 서비스 기업으로 대전환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대전환의 시기에는 개별 브랜드 중심으로 세일즈에 집중하는 것 보다, 그룹이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대로 큰 그림을 그려주는 조직 구성이 효과적이다. 그룹 차원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폭스바겐그룹코리아가 한국 취재진을 독일에 파견해 각지 공장과 연구소를 돌며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전동화 과정을 보여준 것이 바로 ‘큰 그림’에 해당된다. 개별 차종 판매에 집중하는 아우디 부문, 폭스바겐 부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틸 셰어 사장은 현지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가볍게 업계 현안을 놓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작년 10월 폭스바겐그룹코리아 CEO로 부임한 틸 셰어 사장은 내부 조직을 정비한 뒤인 지난 3월 31일, 연례 기자간담회에서 몇 가지 의미 있는 내용을 발표했다. 기자간담회의 통상적인 주제는 2021년의 성과를 알리고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발표하는 내용이었지만 여느 해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하나는 폭스바겐그룹코리아의 사명 변경을 알리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새로운 산하 브랜드를 들여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회사의 한국 법인명은 그 동안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였으나 ‘폭스바겐그룹코리아’라는 사명이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독일의 폭스바겐그룹이 천명한 ‘뉴 오토(NEW AUTO)’ 전략을 코리아에서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준비 자세였다. 독일의 폭스바겐그룹에서 조직개편을 단행한 이유를 들어보면 그룹코리아의 변화 배경도 점칠 수 있다. 독일 그룹에서 밝힌 이유는 “그룹 산하 여러 브랜드를 보유한 조직을 그룹 안으로 통합해 복잡성과 불필요한 중복을 줄이고 그룹 시너지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틸 셰어 사장은 새로운 브랜드의 도입도 언급했다. 폭스바겐그룹 산하 브랜드 중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는 스코다(ŠKODA), 세아트(SEAT), 쿠프라(CUPRA), 두카티(Ducati) 등이 있다. 틸 셰어 사장이 신규 브랜드 런칭을 언급한 것은 그룹코리아가 각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경영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그 동안의 그룹코리아는 사회공헌활동 같은 상징적 역할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는 국내 자동차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탈리아의 볼료나에서 한국 취재진과 캐주얼 미팅 시간을 가진 틸 셰어 사장은 그러나 민감한 질문에는 매우 노련한 화법으로 피해갔다.
가장 궁금했던 신규 브랜드 런칭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신규 브랜드 런칭과 같은 중대한 사안은 수년간 시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다. 앞으로도 고객의 니즈와 시장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논의해 나갈 것이며, 신규 브랜드 런칭이 확정된다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폭스바겐 부문이 인기 전기차인 ID.3를 국내에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결정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안이었다. 폭스바겐그룹코리아 CEO로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 지 궁금했다. 셰어 사장은 “차량을 출시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시장 니즈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각 세그먼트마다 어떤 고객 니즈가 있는지 파악한 뒤 특정 모델의 국내 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은 전적으로 브랜드의 권한이다. 2003년 폭스바겐그룹에 합류한 뒤 현재까지 포르쉐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룹 산하 브랜드를 거쳐온 경험을 토대로 제품 출시 전 여러 단계 조율을 위한 첨언 정도는 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디젤게이트 이후 여전히 침체국면인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실적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2016 년 당시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폭스바겐그룹이 큰 타격이 있었다.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조직과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제품 포트폴리오 및 서비스 다각화를 꾀한다면 고객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 년간 전례없는 코로나 19 상황으로 폭스바겐그룹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가 더딘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 판매 수치는 꾸준히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
폭스바겐그룹코리아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조직 재정비가 어느 정도 완료된 뒤 그룹차원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 지 묻는 질문에는 “2016 년 당시 그룹과 그룹 산하 브랜드의 타격이 컸기 때문에, 각 브랜드의 회복을 돕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한다. 각 브랜드의 성장 기반을 마련해 조직 안정화를 이뤄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공급망에 있어서도 외부적인 불안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조직과 판매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안정화 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진다면 그룹과 브랜드 간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작업에 집중할 것이다. 본사 전략과 연계해 경쟁력 있는 다양한 신차를 출시하고 그룹과 브랜드 간 시너지를 높일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에게는 한 차원 높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반을 건실하게 다져 나갈 계획이다. 각각의 브랜드가 주체적이도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브랜드 간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기회와 협업모델을 모색하고, 전사적 차원에서 한 목소리를 유지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