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소환사의 협곡을 떠났던 그가 다시 무대에 선다. 3개월 넘게 공백이 있었음에도 마스터 60점 정도에 있던 자신의 위치를 불과 4일만에 챌린저 860까지 끌려 올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친정 담원 기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의 복귀에 팬들은 열광하고 있다.
지난 스토브리그 친정 담원을 포함해 여러 팀들의 열렬한 러브콜을 마다하고 휴업을 선언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3개월을 그동안 소진했던 에너지를 채운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자신의 자리는 천상 프로게이머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말에서 그의 복귀가 결코 쉽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었다. 다시 협곡으로 돌아온 담원의 탑 라이너 '너구리' 장하권을 만났다.
"은퇴를 생각했어요"
"안녕하세요. 담원 기아 탑 라이너 '너구리' 장하권입니다. 오랜만에 인사 드려서 살짝 쑥스럽다. 복귀 촬영과 인터뷰 등을 하면서 '다시 프로게이머를 하게 됐구나'라고 돌아온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라며 인터뷰의 말문을 열었다.
2020 담원의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우승을 이끈 주역으로 지난 2021년 역대급 대우로 LPL FPX로 둥지를 옮겼던 그는 롤드컵 조별리그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2021년 롤드컵 결과는 너무나 아쉬웠어요. 바닥을 찍으면서 솔직히 은퇴를 생각했어요. 쉬는 걸 결심한 건 자존감도 너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복귀에 의미를 부여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선 나에게 실망을 많이 했었죠. 주변에서 말하는 몸값 같은 나에 대한 표현은 과거에 대한 보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에너지가 많이 방전된 상황에서 선수를 계속 하는 것은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프로게이머라면 진짜 프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MBTI 16가지 성격 유형 중 '너구리' 장하권은 논리적인 사색가, 아이디어 뱅크형으로 분류되는 INTP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사고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현실감각이 필요한 일이나,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될 때는 견디기 힘들기도 하다.
휴식기간 동안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던 그는 운명처럼 리그 오브 레전드를 다시 잡았고, 돌아오게 된 친정 담원에 큰 어려움없이 자연스럽게 동화됐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처음에는 정말 은퇴를 심각하게 생각했고, 하려고 했어요. 가족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그냥 그만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아무것도 안하고 지내다 보니 약간 그렇더라고요. '뭔가 보람차게 지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활동적으로 다니기도 했는데, 저와 맞는 걸 찾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사람이 급해지더라고요. 쉬면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 거죠.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한 번 롤을 해봐야겠다고 해서 시작한 건데, 점수가 올라가더라고요. 다시 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밤을 새면서 하는데도 힘들지도 않고, 즐거웠어요."
복귀 후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림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5월 1일부터 계약이었지만, 팀에 일찍 합류했어요. 양대인 감독님, 이재민 코치님, (김)건부, 허수 같이 예전 동료들은 물론 새로운 동료들과도 연습이나 워크숍을 하면서 큰 어려움 없이 팀에 적응한 것 같아요. 워크숍에서는 요트도 타고, 카트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동료들이 저에게 많이 맞춰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함께 팀의 목표를 해내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잘하는 게 제일 중요, 아직 갈 길이 멀어"
담원 기아는 지난 2년간 스토브리그에서 '너구리' 장하권을 붙잡기 위해 공을 들였다. 장하권의 휴식 선언으로 다른 카드를 수혈했던 스프링 시즌의 결과는 참담했다. '캐니언' 김건부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최종 3위라는 아쉬움이 남는 성적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스프링 시즌 종료 직후 다시 공을 들여 장하권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한 담원 기아는 LCK 탑 포지션 최고 대우로 그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결국 '너구리' 장하권의 복귀로 담원 기아는 소위 상체로 불리는 탑-정글-미드는 2020 우승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장하권의 복귀를 바라보는 팬들의 기대감도 남다르다. 팀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던 탑에 장하권이 가세하면서 단숨에 '우승도 바라볼 수 있게됐다'는 폭발적인 반응으로 담원 기아의 행보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장하권은 신중했다. 팀원들과 합 뿐만 아니라 개인 기량을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전했다.
"처음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을 때는 팀에서는 막내였어요. 이제는 제가 맏형이 됐죠. 그 점이 사실 제일 신기해요. 아직도 막내 같거든요. 하지만 맏형의 책임감 보다는 '롤을 잘하자' '탑을 제일 잘하자'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시 팀에 들어오면서 스프링 시즌 맞췄던 합을 다시 올려야 하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실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아쉬운 점을 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정말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요. 부족함을 채워야 합니다."
다시 시작된 경주마 모드, "목표는 세계 최고의 선수"
10대 중반에 시작한 프로게이머 생활. 그는 휴식기 동안 자신의 내적과 외적의 부족함을 채우고 싶었다고 전했다. 복귀 이후에도 운동과 취미생활을 하고 싶었다는 계획도 전했지만 현실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정오에 일과를 시작해 다음날 새벽 4시에서 길게는 5시까지 그는 LOL을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사실 제 자신이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많이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습 외 시간에는 운동도 하고, 피아노 같은 취미 생활도 하는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돌아와서 연습을 하니까 바로 경주마가 되더라고요.(웃음). 롤이 잘 안되는 게 느껴지니까 자는 시간과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여기에 매달리는 경주마가 된거죠. 올해는 늦게 시작하면서 촉박하기도 하잖아요."
휴식기 였던 스프링 시즌 LCK 전 경기를 늦더라도 모두 시청했다는 그는 목표를 묻자 반짝이는 눈빛으로 주저없이 "최고가 되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스프링 시즌서 우승을 한 T1도, 준우승한 젠지도 정말 강한 것 같아요. 그래도 저나 우리팀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요. 제가 지금 제일 잘하는 것은 롤이고, 롤을 제일 잘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전 세계 어느 탑을 만나도 절대로 안 지고, 팀을 우승시키고 싶어요. 다른 팀들을 뛰어넘을 수 있게 롤 실력을 키워서 목표인 우승을 해내야죠."
마지막 장하권은 지난 해 자신과 함께 FPX 동료들과 팬들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말과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중국 팬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많아요. 펀플러스 시절에 너무 부진했죠.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이었어요. 기대도 많이 받고 사랑도 많이 받았는데 많이 못 보여드린 것 같아 그 점이 너무 아쉽다고 생각해요. 담원 기아에서 다시 선수로 뛰게됐는데 하고 싶은 말은 팬 분들께서 제가 뛰는 경기를 봤을 때, '진짜 재밌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어요. 팬 분들께서 제가 뛰는 모습을 보고 에너지를 얻어 가시게 하고 싶어요. 팬분들과 선수의 사이를 보면 저희가 팬 분들에게 기쁨을 준다고 하지만, 사실 선수들이 받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팬 분들이 계셔서 e스포츠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 scrapp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