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이번 수도권 원정에서 3승6패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5할 승률이 무너졌다. 패배의 과정도 좋지 않았다. 허문회 감독의 신념에 발목 잡혀 유연하지 못한 운영과 오판들로 얼룩졌다.
아이러니하다. 롯데는 현재 20승21패로 5할 승률 언저리에 있다. 지난해 최하위였던 팀이 현재 5강 싸움을 펼치고 있다. 현재 6위이고 5위 KIA(23승18패)와 3경기 차다. 144경기 중 41경기를 치렀다. 아직 100경기가 넘게 남았다. 충분히 5강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수도권 원정 9연전에 앞서 치른 롯데의 경기들, 그리고 패배들은 어느 정도 납득을 할 수 있었다. 실책으로 자멸하지 않았다. 패배의 결이 달랐다. 아드리안 샘슨의 부친상과 자가 격리 여파로 선발진이 불완전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전력이 꾸려졌고, 6연승의 기세를 달리며 수도권 원정 9연전에 호기롭게 임한 결과는 3승6패, 끝내기 패배 4차례 포함 1점 차 패배 5번. 롯데는 어쩌면 승리할 수 있었던 경기들을 놓쳤다. 감독을 비롯한 벤치의 오판들이었다.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선수들이 아닌 감독에게 비판을 해달라”고 스스로 말했던 허문회 감독이고, 이제 그 말을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수도권 원정 첫 경기인 지난 12일 잠실 LG전(10회 2-3 끝내기 패)은 선발 댄 스트레일리의 7⅓이닝 2실점(1자책점) 역투가 빛이 바랬다. 타선이 침묵했고, 결정적 순간 나온 폭투가 운이 따르지 않았다. 구승민, 박진형 등 필승조들을 투입시켰지만 흐름을 돌리기 힘들었다. 불가항력이었다.
13일 경기는 극적으로 뒤집기에 성공했다(7-6 승). 14일은 선발 샘슨이 경기 중반 갑작스런 난조로 5⅓이닝 6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불펜 운영 과정에서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16일 고척 키움 3연전 첫 경기는 딕슨 마차도의 맹타, 노경은의 6이닝 3실점 역투, 그리고 대타 작전까지 통하면서 7-5 승리. 하지만 17일 키움전이 납득할 수 없는 경기들의 시발점이었다. 3점을 선취했지만 추가점을 뽑지 못했고 결국 3-2로 쫓기는 가운데 8회 동점을 허용했다. 그리고 9회 마무리 김원중이 아닌 이인복을 내세웠다. 이정후에게 끝내기 안타를 얻어맞고 3-4로 패했다.
원정 경기에서 동점 혹은 접전으로 경기 후반으로 향할 경우 마무리를 투입하는 결정이 그리 쉽지 않다. 마무리가 무너지면 뒤가 없고 패배의 내상은 더욱 커진다. 허문회 감독은 이러한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수도권 원정 참사의 서막이 된 신념이다.
18일 경기 역시 마찬가지. 선발 스트레일리가 8이닝 2실점의 역투를 펼쳤고 꽁꽁 틀어막히던 타선이 9회 2사 후 극적인 동점에 성공했다. 뒤집기의 의지는 벤치의 결단에 달렸다. 하지만 이번 역시 마무리 김원중은 불펜에서만 모습을 드러냈다. 좌투수 부재 속에 사이드암 오현택이 박정음, 주효상 등 주축이 아닌 좌타자들에게마저 고전하며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다시 루징시리즈.
19일 수원 KT전(10회 8-9 끝내기 패)은 롯데가 반드시 잡았어야 하는 경기다. 롯데 킬러 배제성을 1회 홈런 3방으로 무너뜨리며 7점을 뽑는 등 8-0의 넉넉한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야금야금 추격을 당했고 6회 필승조를 투입했지만 8-8 동점을 헌납했다. 롯데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식었다. 결국 추가점 없이 경기는 연장으로 흘렀지만, 김원중은 또 등판하지 않았다. 8점을 앞서다 뒤집힐 위기였고 필승조가 총출동 했지만 마무리는 또 개점휴업. 잡아야 했던 경기는 신념에 발목 잡힌 오판으로 어처구니 없이 패했다.
20일 경기는 8-0 완승. 충격패의 여파를 지웠다. 그러나 21일 경기, 9회초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0-3으로 끌려가던 롯데였지만 9회 1사 후 이대호, 마차도, 안치홍의 연속 3안타로 1사 만루 기회를 잡는다. 벤치는 대타 없이 시즌 2할 초반대 타율, 이날 안타가 없던 김재유를 밀어붙였다. 손아섭이 대타로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몸을 풀었다. 결과는 삼진, 그리고 후속인 한동희 타석에 손아섭을 대타로 내세웠다. 손아섭이 2타점 적시타를 뽑아냈지만 2사 후였고 이후 김준태가 범타로 물러나 경기는 끝났다.
결과론이다. 하지만 한동희가 최근 5경기 연속 안타로 최근 감이 괜찮았던 편이었기에 벤치의 판단은 모두를 갸우뚱하게 했다. 김재유가 지난 16일 고척 키움전 8회 만루에서 대타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던 잔상이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기엔 벤치의 판단은 냉철하지 못했고 요행을 바라는 수준이었다. 데이터를 중시하지만 때로는 현장의 촉도 적절하게 결합했던 허문회 감독은 정작 확률을 버렸다.
납득할 수 있는 패배가 줄어든 것에 만족한다던 허문회 감독이었지만 수도권 9연전의 패배는 납득하기 힘든 결과들이었다. 신념이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이 결과가 계속된다면 오판이고 고집을 넘어 아집이 된다. 결과론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결과론은 뒤늦은 책임 회피다. '팀의 미래를 위해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지만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다 눈 앞의 경기들을 허무하게 놓쳤다. 유연한 운영의 묘가 없었다. 취임일성 때 "가을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오판들이 낳은 패배가 가을 순위 싸움 때 아쉬운 1승으로 다가와 가을야구를 놓칠 수 있다.
30경기는 선수단을 파악하고 팀 컬러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라고 했던 허문회 감독이다. 허문회호를 향한 ‘허니문’은 끝났다. /jhra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