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만에 영암벌에 고동이 크게 울렸다. 관중들의 함성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대회가 열린 게 기적같다”며 ‘2020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의 개막에 감사했다.
‘2020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이 20일 전라남도 영암군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5.615㎞)에서 개막했다. 예년 같으면 4월에 열렸어야 할 개막전이다.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막전 일정이 2차례나 연기된 끝에 20일에야 올 시즌의 문을 열 수가 있었다.
이날 경기는 한국모터스포츠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슈퍼레이스’라는 타이틀로 열린 경기가 100번째를 맞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화려한 팡파르와 구름 관중의 함성이 따라야 마땅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속 거리두기는 100번째 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르게 만들었다. 2007년 시작한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은 14시즌만에 100번째 경기를 맞으며 ‘소리없는 함성’에 감사인사를 올렸다.

개막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슈퍼 6000’ 클래스였다. 이 클래스에 참가하는 차량은 사운드부터가 다르다. 최고출력 460마력의 GM LS3 V8 6.2리터 엔진이 만들어 내는 굉음은 말그대로 심장을 떨리게 한다. KIC의 직선주로에서는 시속 250km를 가볍게 오르내리는 무시무시한 머신이다.
배기량 6,200cc의 V8엔진은 올해부터 토요타 GR 수프라로 옷을 바꿔 입었다. 지난 시즌까지는 캐딜락 ATS-V의 외관에 이 엔진을 얹고 달렸다. 올 시즌부터는 GR 수프라가 향후 3년간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의 공식 카울(Cowl)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슈퍼 6000’ 클래스는 레이싱카의 외형이 달라졌다. GR 수프라는 처음부터 스포츠카 디자인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이날 ‘슈퍼 6000’ 클래스 참가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랩타임을 1, 2초 가량 줄이는 부수효과도 챙겼다. 공기역학은 실재(實在)했다.
‘슈퍼 6000’ 클래스 개막전은 작년 시즌 챔피언 김종겸(아트라스비엑스 모터스포츠)의 독무대가 됐다. 2018년 역대 최연소(28세) 시즌 챔피언에 오르며 모터스포츠계를 깜짝 놀라게 한 김종겸은 여세를 모아 작년까지 2년 연속 시즌 챔피언에 등극했고, 이날 우승으로 3년 연속 시즌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을 쌓았다. 슈퍼 6000 클래스에서 개막전 우승자가 시리즈 챔피언이 될 확률은 지난 시즌까지 산술적으로 30%를 가리키고 있다.

김종겸의 개막전 활약은 20일 오전에 열린 3차례의 예선전에서 예고 됐다. 슈퍼 6000 클래스는 결승 그리드 선정을 위해 넉다운 방식으로 3차에 걸친 예선을 거치는데 김종겸은 3번의 타임 트라이얼에서 모두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 결승전 폴포지션을 확보했다.
오후에 열린 결승에서 김종겸은 딱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롤링스타트 방식으로 스타트 신호가 울리면서 선두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폴포지션의 김종겸과 예선 2위 조항우(아트라스비엑스 모터스포츠)가 첫 코너에서부터 아슬아슬하게 맞붙었다. 큰 상황이 세번째 코너에서 벌어졌다. 빈틈을 노리며 진격하던 조항우의 차가 김종겸의 후미를 살짝 건드리며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김종겸은 큰 타격없이 선두질주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조항우의 차는 서킷을 벗어나 안전지대에 멈추고 말았고, 결국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첫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김종겸은 자신과의 싸움을 착실하게 펼쳐나갔다. 7랩째 이미 2위와의 랩타임을 3.9초 이상 벌린 김종겸이었지만 결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우승 후 김종겸은 “첫 랩에서의 충돌에서 약간의 대미지가 있었다. 좌코너와 우코너에서 차의 반응이 약간 달라 그 차이를 감안하면서 달렸다. 선수들의 기량이 비슷비슷해 마지막 랩까지 한순간도 자만하지 않고 내달렸다”고 말했다.

디펜딩 시즌 챔피언으로서의 각오를 묻는 질문에는 “챔피언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올 시즌도 챔피언에 도전하기 위해서 뛴다”고 말했다. “카울 스폰서가 달라졌기 때문에 부품들도 바뀌고, 완전히 새로운 차를 타는 마음으로 대회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막전 우승자인 김종겸은 21일 열리는 2차전에서는 차량에 80kg의 추를 싣고 달려야 하는 핸디캡을 받아야 한다.
김종겸(40분46초650)의 뒤를 이어 엑스타 레이싱의 정의철(40분51초961), 서한 GP의 장현진(41분7초935)이 2, 3위로 골인했고 플릿퍼플모터스포츠 소속의 오일기(41분21초639)는 13번 그리드에서 출발해 4위로 골인하는 관록을 보여줬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