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가 결국 17연패와 마주했다. 총력전 선언이 무색하게 선수들의 몸은 부담감에 굳어갔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를 번번이 놓쳤고 자멸했다.
한화는 1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정규리그에서 0-5로 패했다. 이로써 한화는 17연패를 기록하며 지난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리그 역대 최다연패 2위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이제 곧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역대 최다 연패인 18연패 기록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7일, 대전 NC전이 끝나고 14연패의 책임을 지고 한용덕 감독이 자진사퇴한 한화다. 이후 최원호 퓨처스팀 감독이 대행을 맡으며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9,10일 롯데전 연달아 패배를 당하며 연패를 끊지 못했다.

이날 경기 전 최원호 감독 대행은 어떻게든 연패를 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비상식적인 운영이 될 수도 있다”는 말로 투수진 총력전을 선언하며 필승조들의 조기 투입, 마무리 정우람의 멀티 이닝 소화 등을 언급했다. 타선 역시 데이터에 근거해 롯데 선발 서준원을 공략할 수 있는 최적의 타순을 꾸렸다. 좌타 피안타율 3할4리에 달한 서준원을 압박하기 위해 1번부터 5번까지 모두 좌타자를 배치하는 등 총 6명의 좌타자를 선발 출장시켰다.
하지만 최원호 감독 대행의 의지에 선수들 역시 집중력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집중력마저도 불운의 결과로 다가왔다. 선수들은 갈수록 부감감에 자신의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선수들이 연패의 부담감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한화는 1회 선발 서준원의 제구 난조를 틈타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이용규의 희생번트, 그리고 호잉의 볼넷까지 묶어 1사 만루 기회를 잡으며 기선제압의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최인호가 삼진, 노시환이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며 초반 득점에 실패했다. 결과론 적이지만 무사 1,2루에서 연패 기간 가장 타격감이 뜨거웠던 이용규의 희생번트가 독으로 작용했다.
2회 역시 노태형의 중전안타와 최재훈의 사구로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이번엔 박한결이 번트에 실패하며 포수 뜬공이 됐다. 이후 정은원이 볼넷으로 출루해 다시 1사 만루 기회가 만들어졌지만 이번에도 정진호가 투수 땅볼, 이용규가 1루수 파울플라이에 그쳤다. 초반 기선 제압에 실패했고 결국 롯데에 1회말 2점을 내주며 끌려가는 경기 양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암흑의 기운이 드리웠다.
4회 다시 1사 만루 기회를 잡은 한화. 하지만 현재 한화라는 팀의 분위기와 기운을 단번에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며 기회를 다시 무산시켰다. 1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정진호가 1루수 땅볼을 때렸다. 홈에서 선행주자가 포수아웃됐다. 느린 땅볼이었기에 병살타는 모면하는 듯 했다. 하지만 정진호는 마음이 앞섰고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포수 지성준의 송구가 1루에 있던 이대호와 정진호가 겹치는 상황이 됐는데, 정진호는 1루에 도달하기 직전 3피트 라인 안쪽으로 달렸다. 송구가 뒤로 빠졌지만 1루심은 3피트 라인 위반 수비 방해로 아웃 처리가 됐다. 최원호 감독대행이 그라운드로 나왔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4회말 1점을 더 내준 한화, 5회말에는 벤치 역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선발 장민재를 2⅓이닝 만에 내리고 올린 김범수가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며 선전하고 있던 상황. 하지만 2사 후 안치홍에게 2루타를 내줬다. 그리고 이대호에게 자동 고의4구를 지시하는 선택을 내렸다. 총력전의 끝이었다. 더 이상의 실점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누상에 주자가 깔린 상황에서 김범수는 점점 더 힘이 떨어져갔고 2사 1,2루에서 오윤석에게 볼넷을 내줘 2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이후 투수 교체 없이 김범수를 끝까지 밀고갔지만 결국 패스트볼 제구가 전혀 되지 않으며 지성준에게 밀어내기 볼넷까지 허용했다. 한화가 더 이상 분위기를 뒤집기 힘든 궁지로 몰렸다. 투수 교체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한 한화 벤치의 패착이었다.
불과 0-4, 단 4점을 뒤진 상태였지만 앞선 8경기 연속 3득점 이하에 그쳤던 한화에는 극복하기 힘든 점수였다. 6회말 2사 1,2루에서 마무리 정우람을 올리는 초강수를 두며 실점을 최소화했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