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하늘에 묻는다' 최민식이 세종과 장영실의 영화 속 디테일한 감정부터 절친한 후배 한석규와의 비하인드, 그리고 한국영화 흥행 1위 '명량'에 대한 솔직한 생각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18일 오전 서울 삼청동 슬로우파크에서는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주연 배우 최민식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최민식은 영화에서 조선의 하늘을 연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맡았다. 관노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과학 지식을 지닌 그는 조선의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과 뜻을 함께하며 각종 천문의기를 발명해낸다. 하지만 비밀에 부쳐왔던 천문 사업이 명나라에 발각되고, 사대의 예를 어겼다는 죄목 아래 명나라로 압송될 상황에 놓인다. 그러던 중 세종이 탄 안여가 부서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안여를 제작한 장영실은 사건의 책임자로 내몰리게 된다.

'명량'(2014), '봉오동 전투'(2019)에서 이순신 장군, 홍범도 장군을 열연해 울림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민식은 이번에도 실존인물인 장영실로 분해 예비 관객들도 기대하고 있다.
'천문'은 개봉 전 일반 시사회를 진행했는데, 만점에 가까운 높은 평점이 나왔다. 이를 접한 최민식은 "솔직히 배우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 시간대에 이것저것을 잘 주어 담은 것 같다"며 "그래도 여전히 목 마르다. 과일로 비유를 하자면, 욕심은 많은데, 담아낼 바구니는 한정돼 있다"며 아쉬운 점과 만족감을 동시에 나타냈다.

"시사회 직후부터 브로맨스 이상의 멜로 느낌이 난다는 평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최민식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두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이 목표를 세우고, 장영실이 조력자이다. 그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되길 바랐다. 우리가 아는 외형적인 역사가 반복되는 자체가 영화적으로 썩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그럼 '천문'을 통해서 무엇을 집중해야 할까 싶었다. '안여 사건' 이후로 장영실이 사라졌고, 그 어떤 기록에도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가 모이게 된 계기다. 그럼 이 두 사람이 어떤 인간 관계였을까 궁금했고,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보다 다른 이야기를 엄청 많이 했다. 아마 모든 이야기를 실현시켰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최민식은 "이 작품을 하는 내내 '세종과 장영실이 과연 좋았을 때만 있었을까?' 싶었다. 둘 다 사람이니까 과학적 아이템을 가지고 잠시 신분을 잊어버리고 격론을 벌였을 수도 있다. 세종은 열려있는 마음으로 장영실을 품었지만, 아이템을 가지고 서로가 농담도 주고 받았을 수도 있다. 의견 대립도 있었을 것 같다. 두 사람의 관계를 더 다이내믹하고, 일종의 파노라마 식으로 다양한 감정을 그리는 게 '천문'에 가깝게 다가가는 길이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든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주군의 뜻을 이루는 데 합류하고자 한다. 그런 에피소드와 감정의 기복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 천편일률적인 애정보다는 그런 걸 조금 더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한석규에 대해 "우리가 캐스팅 될 때, 허진호 감독이 '두 사람이 알아서 세종을 할지, 장영실을 할지 정하라'고 했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얘기를 하라고 하더라. 석규가 '제가 세종을 할게요'라고 하더라. 예전에 드라마에서 한 번 했지만,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장영실을 할게'라고 했다. 아마 '천문'이 아니어도 석규랑 했을 것 같다. 같이 한다는 게 의미가 크다"며 절친한 후배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원래 석규가 술을 한 잔도 못한다. (동국)대학교 시절 소주와 맥주를 한 잔만 마셔도 '119를 불러야 하나' 걱정했다. 그런데 이제는 맥주 3잔까지 마실 수 있더라. 대단한 장족의 발전이다.(웃음) 석규는 정말 대학교 때랑 지금이랑 말투가 똑같다. 테이프 늘어진 것 같은 말투다. '그게 말이죠~ 민식이 형, 뭐 먹을까?'라고 하면 '빨리 얘기해, 속 터지니까'라고 한다. 분명히 서울 토박이인데, 충청도인 줄 알았다. 지금의 느긋함이 대학교 1학년 때 모습이다. 내가 그때부터 '어르신 나오셨어요'라고 했었다"며 대학시절 에피소드를 고백해 웃음을 안겼다.
최민식과 한석규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로, 30년 넘게 두터운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발점인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했고, 2003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만날 뻔 했지만, 아쉽게 불발됐다.
최민식은 "영화 '올드보이'의 이우진 캐릭터에 한석규를 추천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는데, 너무 아쉬웠다. 진짜 한석규가 연기하는 이우진을 보고 싶었다. 그때 우리가 만났다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유지태도 좋았지만, 그땐 간절히 (석규를) 원했었다. 한석규가 하는 우진이도 괜찮았을 것 같다"며 "석규와 세 작품을 더 해야 한다고 얘기를 나눴다. '천문'을 했으니, '덤앤더머' 같은 코미디,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의 장르도 해보고 싶다"며 비하인드를 알려줬다.

연출자로 만난 허진호 감독에 대해서는 "감독이 배우를 믿고 그라운드를 만들어서 뛰어놀게 해준다는 것은 고도의 연출력"이라며 "연출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현해내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재료 중의 하나가 배우다. 허진호 감독은 최민식, 한석규 배우에 대한 속성, 재질, 성질,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잔소리를 하기 보다 '너희들끼리 마음대로 놀아봐라' 하더라. 자신의 생각과 좀 약간 벗어나 있으면, 그럴 때만 디렉션을 있었다"며 당시 현장을 떠올렸다.
그는 "어떻게 보면 여우이고, 그 자체가 고도의 연출력이다. 무언가 자기 것을 계속 주장하면 그게 잔소리인데, 그런 게 없었다. 그러면 배우의 반경이 위축된다. 그런데 허진호 감독은 '일단 한번 해보세요' 한다. 큰 틀에서 봤을 때 굉장히 편안하게 작업했다"며 만족했다.
이와 함께 최민식은 자신의 대표작 '명량'이 1,761만 관객을 동원해 지난 5년간 국내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사실 그 기록은 다 잊었다"는 최민식은 " '명량' 이후 세 작품을 연달아 말아먹었다. 쓴맛을 보지 않았나. 심지어 나보고 '국밥 배우'라고 하더라. 난 흥망성쇠에 대해 개념이 별로 없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거 신경 쓰다가는 못 산다.(웃음) 개봉할 때 쯤 실시간 예매율이 열리면, 영진위 사이트에 들어가서 몇 %인지 보는 거 피곤하다. 홍보팀에서 얘기해주면 가끔 듣는다. 스코어가 좋게 나오면 기분 안 좋을 사람은 없지만 그것에 연연하면 안 된다. 그게 어떻게 보면 마음 공부인데, 나도 인간이지만 마음 덜어내기가 쉽지가 않다. 오로지 작품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세 작품이 잘 안 됐으니까 '이번 작품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그런데 그걸 추스르는 게 중요하다. 후배들에게도 '자꾸 주판알 튕기지 마라'고 한다. 내가 뭘 표현하는 데 부족했고 연기를 업그레이드 시키려 고 노력해야지, 관객수에 연연하지 말라고 한다. '연기에서 돈 냄새가 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관객들과의 신뢰감이 형성되려면 연기를 잘 하면 되고, 작품에 잘 녹아 들면 된다. 그러면 관객수도 늘고, 돈도 벌 수 있다. 그 생각 없이 예매율만 보면 안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원칙, 기준, 그게 얼마나 소중한 지 많이 느낀다. '결국 날 지탱해주는 것이구나'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편, 오는 26일 개봉하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다.
세종과 장영실의 엄청난 신분 차이를 뛰어 넘는 특별한 우정은 세종 24년에 일어난 '안여 사건'(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安與)가 부서지는 사건)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는다. 장영실은 '안여 사건' 이후 역사적 기록에서 사라지며 행방이 묘연해지는데, 이러한 실제 역사를 토대로 장영실이 의문만 남긴 채 사라진 이유에 대해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완성됐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 감독으로 자리잡은 허진호 감독이 '덕혜옹주'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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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