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③에 이어) 배우 김해숙이 “제가 ‘아이 캔 스피크’를 아직 보지 못했다”라고 말해 그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는 지난해 328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으며 주연 배우 나문희가 같은 해 열린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충무로를 강타했다.
김해숙은 8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저는 '허스토리'라는 작품을 통해 세상을 넓게 보게 된 거 같다. 내 일이 아니라도 남의 입장에서 한 번 쯤 (삶을)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달 27일 개봉하는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6년 동안 일본 시모노세키-부산을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투쟁, 즉 관부재판을 벌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이들의 승소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재판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노력과 진심을 느낄 수 있다.
끝나지 않은 고통에 몸부림치던 할머니들은 관부재판을 통해 연대하면서 조금씩 바뀐다. 속으로 움츠러들던 이들은 나중에는 자신들을 가리켜 '국가대표'라고 부르기도.
1998년 일본 재판부는 1심 판결에서 원고단 중 위안부 피해자 3명에게 각각 30만 엔(약 300만 원)씩 지급할 것을 정부 측에 명령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 사죄 요청은 인정하지 않았다. 영화가 다루는 시기는 이때까지다.
이후 5년간 계속된 항소, 상고 끝에 판결은 뒤집히면서 실제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아무런 사죄나 보상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4월 재판에 참여한 마지막 원고 이순덕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며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현재 28명이다. '허스토리'가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면, '아이 캔 스피크'는 휴먼 코미디 드라마로 풀어냈다는 차이가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통과됐던 2007년의 이야기를 휴먼 코미디라는 대중적인 틀 안에 녹여냈다.
김해숙은 “저는 나문희 선배님을 너무나 존경한다. 배우로서, 인간적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해숙은 '아이 캔 스피크'를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아이 캔 스피크'가 같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 영화라 저로선 너무 보고 싶었다. 감정을 알고 싶어서 그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못 봤다”며 “영화를 못 본 게 나문희 선배님에게 너무 죄송하다. 저는 아무 것도 안 보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오로지 배정길에만 집중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김해숙은 그러면서 "아까도 말했듯 저는 제 자신을 내려놓으면서, 그 인물 자체에 집중했다”며 “배우로서의 기본적인 욕심, 자존심이기도 했다. (영화를 본다는 게)오히려 제게 독이 될 것 같아서 저만의, 김해숙의 배정길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진심을 전했다.
그는 “(민규동 감독님이 오랜 시간 준비해오셨고)이 영화가 결국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아이 캔 스피크’는 이미 상영이 시작됐었다. 그렇지만 저는 ‘허스토리’에 집중해야 했다. 집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허스토리 촬영 후까지) 보면 안 된다는 개인적인 결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들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결정이었던 거 같다. 이제 볼 수 있다(웃음). 제가 보고 나서 선생님에게 꼭 말씀을 드릴 거다(웃음)”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연기적으로)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저희는 실존 인물들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겁 없이, 어쩌면 제 인생에서 역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생각은 확실히 접었다. 오로지 (배정길)그 분이 되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했다"라는 각오를 가졌었다고 했다.
"뭔가를 내려 놓는다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동안 제가 내려놓지 못 했었나 싶다.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내려 놓고 비운다는 게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purplish@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