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전’(감독 이해영)을 관람하고 나면 주연 배우들 외에도 뇌리에 깊이 박히는 배우가 있다. 아시아를 주름 잡는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故김주혁 분)의 파트너 보령을 연기한 배우 진서연은 강렬한 카리스마와 리얼한 연기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고 그 캐릭터를 소화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진서연은 최근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여기 출연하신 선배님들, 준열 씨 포함 제가 원래 되게 좋아하는 배우들을 총집합해놨어요. 성령 선배님, 차승원 선배님 너무 스타일리시 하시고 연기 재미있게 하시고 진웅 선배님은 메소드 연기 너무 잘하시고 준열 씨는 요즘에 떠오르는 스타인데 잘생김을 연기하는 잘하는 배우고 다들 실제로 만나보고 싶고 같이 해보고 싶었던 배우들이었어요. 또 감독님도 제가 ‘천하장사 마돈나’ 때부터 팬이었어요. 저한테는 완전 천국인거죠. 그런데 여기에 똥물이 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뭔가 누를 끼치면 ‘독전’이 산으로 가겠구나 라는 부담이 엄청났어요. 이게 잘되면 선배님들 잘해서 된 거고 잘못되면 내 탓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준비를 되게 저 나름대로 엄청 많이 한 것 같아요. 고통스럽게 했어요. 몸도 그렇고 디테일한 상황도 그렇고 보령의 정신상태나 그런 것들을 디테일하게 감독님과 정말 많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든 캐릭터에요.”
팬이었던 이해영 감독과의 작업이 어땠냐는 질문에 그는 “너무 좋았어요. 왜냐하면 저도 되게 디테일한 성격이라 이해 안 되는데 넘어가고 ‘그렇게 해’ 그러면 못 움직이는 스타일이거든요. 감독님이 섬세하시기도 하고 되게 감각적이셔서 저랑 이야기를 하면 서로 계속 시너지가 플러스 되는 거예요. 보령이 이렇게 입체감 있게 볼륨감 있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감독님과 저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어서 그렇지 않았나 생각해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독님이 처음부터 진하림과 보령은 동등한 입장의 파트너십으로 나왔으면 좋겠고 상하관계가 아니라 같이 살벌했으면 좋겠고 같이 공포스러웠으면 좋겠고 남들로 하여금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름끼쳤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설정한 보령과 김주혁 선배님이 설정한 진하림이 너무 케미가 잘 맞았어요. 선배님도 보통 악당들이 하는 느낌의 연기를 하지 않으셨잖아요. 힘 다 빼고 하셨잖아요. 저도 이렇게 위화감을 주는 캐릭터인데 즐겁게 웃으면서 천진난만하게 하면 얼마나 소름끼치고 무서울까 이렇게 설정을 잡았거든요. 그 코드가 맞아서 케미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감독님이 대본을 잘 써주셨던 것에 저는 숟가락을 얹었을 뿐인 것 같아요.”
극 중 故 김주혁과 말 그대로 미친 호흡과 연기를 보여준 진서연은 김주혁에 대해 “김주혁 선배님은 굉장히 내성적이세요. 눈도 잘 못 마주치세요. 그런데 눈도 안 마주치시고 툭툭 내뱉는 말들이 굉장히 웃기세요. 되게 유머러스하시고. 저는 그 분의 유머를 굉장히 사랑했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주혁 선배님은 제가 뭔가를 했을 때 리액션을 200% 다 받아주셔서 저는 그러면 또 신이 나서 ‘이걸 다 받아주셨어? 다음엔 더 세게 한 번 해봐지’ 이렇게 신나게 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故 김주혁의 마지막 작품에 상대역이 됐다는 말에 그는 “만감이 교차하기는 하는데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영광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현장에서 받은 그 김주혁 선배님의 유쾌함과 천진난만함으로 기억을 하고 싶어요. 누군가 ‘어땠어’라고 물어보면 즐거운 얘기만 하고 싶어요. ‘우리 너무 좋았어. 즐거웠어. 신났어. 우리 둘이 너무 신나게 했어’ 이런 얘기만 하고 싶은 것 같아요. 슬프게 얘기 할 것도 없고 실제로 그랬으니까”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촬영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고 밝힌 그는 촬영장에서 캐릭터 상 다른 인물들을 일부러 멀리했다며 최근 홍보와 무대인사를 하면서 배우들과 친해졌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다른 분들이랑은 일부러 제가 소통을 많이 안했어요. 왜냐하면 저한테는 죽여도 상관없는 존재들, 먼지 같은 존재들인데 촬영 전에 친하게 정을 쌓고 그러면 제가 그렇게 못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준열 씨랑 진웅 선배님은 일부러 멀리했어요. 다들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어요. 그리고 준열 씨가 또 너무 웃겨요. 진웅 선배님도 막 웃기시고 차승원 선배님도 재미있으시고 성령 선배님은 해맑고 너무 귀여워요. 저도 같이 섞여서 얘기하고 놀고 싶지. 너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정들어서 제가 연기할 때 눈빛이 안 나올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많이 얘기를 안 하고 김주혁 선배님이랑 조금 얘기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홍보하면서 이제 친해졌어요.”
류준열, 조진웅과 연기 호흡에 대해서는 “워낙 잘하시니까. 그들이 하는 연기를 모니터할 때 제가 나오는 씬은 아니지만 얼굴 삐죽 내밀고 같이 봤어요. 좋았어요. 막 장난치다가도 슛 갈게요 하면 또 딱 락이가 되고 형사가 되어서 하는 거 보고 ‘아 진짜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었어요. 저는 슛 가기 전부터 준비하고 음악 듣고 하는데 역시 프로들”이라며 감탄했다.
진서연은 벌써 데뷔 한지 10년이 넘은 배우. 하지만 ‘독전’으로 이제야 빛을 보게 됐다. 그동안의 시간동안 조급함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없었어요. 왜냐면 저는 할머니 될 때까지 할건데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2년 3년 뭐 쉴 수도 있지. 나한테 맞는 작품이 없을 수도 있잖아’ 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소처럼 일하자 주의는 아니에요. 그게 뭐 직업 정신이 없다 라기 보다는 저는 제가 재미있어야 잘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내가 신나는 거, 내가 잘할 수 있는 거 위주로 하다 보니 이렇게 적극적으로 막 파헤치고 다니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작품을 안 할 때 논게 아니라 작품을 할 때처럼 이 정도의 텐션감을 항상 유지했던 것 같아요. 몸도 만들고 연기 수업도 하고 책도 많이 보고 영화도 많이 보고 바쁜 거는 비슷했어요. 촬영이 없다고 백수처럼 하루도 그렇게 있었던 적이 없어요. 그런데 스스로 혼자 한다는 게 그게 힘들더라고요. 누가 검사하지 않고 언제 날 체크할지 모르는데 준비하는게 좀 외롭고 힘든 길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독보적인 캐릭터로 충무로에 혜성같이 등장한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가운데 앞으로 하고 싶은 장르와 캐릭터를 묻는 질문에 “보령 같은 캐릭터를 몇 번 더 해도 재미있을 것 같고 저는 원래 범죄 스릴러 범죄물 좋아하는데 액션 같은 것도 되게 해보고 싶어요.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로맨틱 코미디. 웃긴 거 자신 있거든요. 웃긴 거, 망가지는 거, 잘못되는 거, 예쁜 거 빼고 다. 하면서도 즐겁잖아요”라며 원하는 상대 배우로는 “너무 많죠. 준열 씨도 진짜 웃기거든요. 준열 씨랑 해도 케미가 엄청 살 것 같고 성령 선배님이랑도 언니 동생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그런 것도 해보고 싶고. 차승원 선배님도 재미있을 것 같고 진웅 선배님도 너무 좋죠”라며 ‘독전’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목표는 없어요. 목표를 정해놓으면 이루면 끝이잖아요. 저는 목표는 없고 매 순간 제가 맡은 캐릭터를 진짜로 신나서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연기 하는게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 내가 이걸로 톱스타가 되어서 광고를 많이 찍어야지 라든지 유명해져서 다른 사업을 벌여야지 이런 야망은 없는데 그냥 저는 연기를 왜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유일하게 제일 재미있어 하는 거여서. 그런데 감사하게 돈도 주시고.(웃음)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건데 정년 퇴직이 없는 직업이니까 너무나 좋잖아요. 할머니 되어서도 할 수 있잖아요. 이걸 계속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을 계속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생각인 것 같아요”라는 바람을 전했다. /mk3244@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