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전’ 이해영 감독이 영원한 명배우 김주혁을 추억했다.
‘독전’은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故 김주혁의 유작이기도 하다. 김주혁은 아시아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 역을 맡아 관객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열연을 선보인다. 진하림은 김주혁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평가되는 ‘공조’(김성훈 감독) 속 차기성을 뛰어넘는 강렬한 매력을 선사한다.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진하림 캐릭터를 만난 김주혁은 광기 어린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故 김주혁의 숨 막히는 열연은 그의 빈자리를 더욱 아쉽게 만든다. 최고의 배우를 잃었다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이해영 감독은 ‘공조’ 전부터 이미 ‘독전’의 진하림 캐릭터를 제안한 상태였다. 이에 대해 “그때는 김주혁이 악역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이라, 악역을 하면 얼마나 새로울까, 얼마나 재밌을까 이런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며 “명확한 악역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비밀은 없다’에서도 그런 느낌을 준 적이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악역을 하면 정말 잘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김주혁에게 악역 연기를 제안한 이유를 설명했다.
‘독전’ 출연을 결심할 당시, 김주혁 역시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던 때였다. 이해영 감독은 “이경미 감독님한테 김주혁이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은 갈증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독전’을 하기로 하고 이후에 ‘공조’를 봤는데 너무 잘 하더라”며 “‘공조’ 보고 나서 김주혁에게 ‘선배님, 너무 잘 하셨고, 너무 다 하셨다. 이제 저 어떡하냐’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시아를 주름잡는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은 오로지 김주혁의, 김주혁에 의한, 김주혁을 위한 캐릭터였다.
“진하림은 레퍼런스가 전혀 없는 인물이었어요. 완전히 강력한, 완전히 새로운, 완전히 돋보이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죠. 김주혁과 얘기를 나눌 때에도 어떤 레퍼런스를 얘기하지 않고, 계속 인물에 대한 설명만 했어요. 이후에 한 번씩 사무실에 놀러 오셔서 넌지시 질문을 하기도 했죠. 분장, 의상 콘셉트 잡을 때도 와서 보고, 배우들 캐스팅 관상 조합도 보셨어요(웃음). 그렇게 조금씩 그림을 그려 나갔던 것 같아요. 매우 천천히 이뤄졌던 작업이었죠.
사실 어떻게 보면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면서 만들어 나갔는데, 처음 등장하는 컷을 찍을 때 완전히 압도됐어요. 다들 완전히 놀랐어요. 정말 깜짝 놀랐죠. 저희조차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인물이었어요. 김주혁이 그 정도의 에너지로 연기한 걸 처음 경험했거든요. 정말 무시무시했죠.”
지난해 김주혁은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영화와 드라마, 다작을 이어가던 김주혁은 “요즘 연기하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데뷔 20주년에도 연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천생 배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강렬한 열연을 남기고 하늘 무대로 떠났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김주혁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자 이름이다. 이해영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다.
“연기하는 게 너무 재밌다고 하셨어요. 훨씬 더 많이 연기하고 싶다고도 했죠. 독립영화 감독들이나 단편 영화 감독들에게 김주혁이라는 배우가 있다고, 꼭 영업해 달라고 했는데…너무 아쉬울 뿐이에요.”/mari@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