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마돈나’, ‘페스티벌’,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등 선보이는 작품마다 독특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이해영 감독이 느와르에 도전했다.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독전’은 이해영 감독이 그간 쓰지 않았던 뇌 근육까지 총동원해 만든 ‘비주얼버스터’로 극장가를 사로잡았다. 상상을 뛰어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탄탄한 시나리오에 배우들의 열연과 범죄물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완성된 ‘독전’은 ‘느와르 끝판왕’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200만 관객을 훌쩍 돌파했다.
‘독전’의 흥행 광풍 속 만난 이해영 감독은 “영화가 잘 됐다는 실감은 정말 나지 않는다. 실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웃었다. 이 감독은 “노동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 홍보를 하게 되니까 여전히 후반 작업 중인 것 같다”며 “스위치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느낌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상기된 상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화려한 비주얼,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범죄극 사상 가장 강렬한 비주얼버스터라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독전’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독한 캐릭터들이 맞붙으며 내뿜는 폭발적인 에너지 아래 숨어있는 진득한 이야기다. 믿을 것인가, 혹은 의심할 것인가, 우리의 믿음은 실체적인 것인가, 혹은 맹목적인 집착인가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이야기는 결말을 확인한 뒤 찾아오는 여운의 이유다.
‘독전’의 결말은 많은 관객들에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굳이 이해영 감독이 패를 숨기려 들지 않기에 영화의 반전은 어쩌면 허무하게도 다가온다. 그러나 숨기지 않는 패 뒤에는 더 큰 이야기가 숨어 있다. ‘독전’을 관람한 많은 관객들이 N차 관람을 이어가는 이유도 그래서다.
“결말은 시나리오부터 명시돼 있었어요. ‘독전’의 불변의 엔딩이었죠. 정해진 결말 말고 다른 엔딩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했어요. 현장에서도 의견은 많이 나눴죠. 결말 이후의 장면을 찍은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영화의 엔딩은 ‘독전’의 태생부터 함께 있었던 엔딩입니다.”
독전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흥미롭게도 영어 제목인 ‘빌리버(Believer)’다. 의심하는 사람, 믿지 못할 사람, 믿지 않는 사람이 가득한 세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믿는 자’를 이야기하는 ‘독전’은 믿음을 판돈으로 벌이는 한 판의 도박 같은 이야기다.
“인물들을 아우를 수 있는 키워드가 믿음이라고 생각했어요. 맹목적으로 믿음에 매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마침내 실체라고 믿는 것을 직면하고 그것의 실체 없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죠. ‘독전’은 누가 응징을 한다고 해서 맺어지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집착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직면하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정서적인 엔딩으로 맺어야만 이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듣고, 보고 있어요. 하지만 결말에서 배우들의 얼굴에 그 감정이 충분히 담겨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원호를 연기한 조진웅, 락을 연기한 류준열을 보시면 충분히 영화에 마침표가 찍힐 거라고 확신합니다.”
(Oh! 커피 한 잔②에서 이어집니다.)/mari@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