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에 이어)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반딧불이-헛간을 태우다’를 각색한 ‘버닝’은 원작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창동 감독만의 독특한 창작 방식을 더한 연출로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의문스러운 남자 벤 역을 맡은 스티븐 연은 18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칸 마제스틱 비치호텔에서 열린 공식 인터뷰에서 “이창동 감독님이 의도하신 건, 영화의 모호함을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저 역시 그게 ‘버닝’의 중요 요소였던 거 같다”며 “감독님의 장점 중 하나는 (연기하면서)배우만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가 알아서 연기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거다”고 자랑했다.
스티븐 연은 이창동 감독을 좋아했지만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당시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고 한다. “제가 한국어가 익숙지 않아 벤을 연기하면 왠지 망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처음엔 고사했었다”라며 “한국어를 외워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겁이 안 나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가 특별히 한 것 없이 영화가 스스로 만들어진 거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이 감독님을 비롯해 아인 씨가 한국어 연기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이어 스티븐 연은 “감독님이 ‘너가 알아서 연기해봐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게 감독님의 영화 촬영 방식 중 굉장한 장점 중 하나인 것 같다. 제가 벤의 외로움을 느껴야 연기를 할 수 있는데, 그를 제대로 이해하고 느껴 표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셨다. 스티븐 연은 벤이 아니지만, 제가 그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었다”고 이창동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를 보면 스티븐 연이 곧 벤처럼 느껴져서다. 실제로 스티븐 연은 벤이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빠져들어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혼란, 정신 분역적 상태를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버닝’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스티븐 연의 한국이름 ‘연상엽’이라고 나온다. 본명으로 적은 이유에 대해 스티븐 연은 “제 한국 이름을 쓴 이유는 이 영화에 얼마나 깊게 들어가 있느냐에 대한 것도 있었고 작품상 한국어 이름을 쓰는 게 맞는 거 같았다”며 “한국에 놀러왔을 때도 가족들을 만나면 상엽이라고 불러주신다. 사실 제가 스티븐 연이라고 불리며 알려진 것도 8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이름을 쓰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스티븐 연은 이날 인터뷰를 하며 시종일관 가슴이 먹먹한 듯한 얼굴이었다. 한국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는 미안한 마음에서인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던 것. 칸영화제 진출 전 갑작스럽게 불거진 욱일기 논란 때문이었다.
스티븐 연은 이에 “영화 외적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며 “(욱일기 논란에) 내가 더 잘 알았어야 했다. 정말 당황했고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말 죄송하다는 거다”라고 사과했다.
앞서 스티븐 연은 미국 영화감독 조 린치가 어린 시절 욱일기 무늬의 의상을 입고 찍었던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 논란이 일었으며 2차례 사과문을 게재했다.
칸(프랑스)=김보라 기자 purplis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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