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은 그간 숱하게 봐왔던 첩보 스파이물과 확실히 달랐다. 상남자들의 주먹이 오가는 거친 액션도 없었고 아군과 적군이 쫓고 쫓는 추격신도 없었다. 남북의 현실을 반영해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엔 생각할 거리와 묵직한 감동을 안긴 새로운 첩보물 형식의 영화였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된 영화 ‘공작’이 현지시간으로 11일 오후 11시 칸 뤼미에르 대극장 공식 상영을 통해 전 세계 평단 및 관객들에게 첫 공개됐다.
이튿날인 12일 새벽 1시 20분이 돼서야 상영이 종료됐지만 관객들은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며 환호를 보냈다. 평단과 관객들은 상영 종료 후 5분 동안 기립박수를 보내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든 배우들과 감독의 노고를 치하했다.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 모티프의 첩보 스파이물이다.
영화의 중심인 흑금성 사건은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가 주도한 대북 공작이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한 회사에 전무로 위장 취업시킨 박채서 씨의 암호명으로, 안기부는 그를 통해 대북사업과 관련한 공작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은 자신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든 게 아니라, 박채서 씨가 수감 중 써준 수기를 바탕으로 현실적이고 과장되지 않은 첩보물을 만들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냉전 중인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담아 여타 첩보영화와 차별화를 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달 열린 남북 정상회담의 긍정적 결과와 맞물렸다는 점에서 시의성도 적절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발표했다. 남북은 두 정상의 결단과 합의로 분단과 대결의 역사를 마감하고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지만, 통일로 가는 과정의 디딤돌이라는 점 또한 현실이다. ‘공작’에서 그린대로 신속한 비핵화 로드맵이 나오고 있다.
칸(프랑스)=김보라 기자 purplis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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