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의 집안' 같은 건 없다. 2018년 현실판 로미오와 쥴리엣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가깝기에 자식들의 연애를 두고 반대에 나선 부모. 그리고 그로 인한 몇 배의 아픔.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가 그려내는 갈등의 모습이다.
지난 28일 방송된 '예쁜 누나'에서는 드디어 엄마 김미연(길해연 분)이 딸 윤진아(손예진 분)와 아들의 친구 서준희(정해인 분)의 관계를 알게 됐고, 이에 뒷목을 잡고 반대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는 잔잔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악역(?)이 된 셈이다.
준희와 진아의 갑작스런 고백에 미연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결사반대에 나선 미연은 사랑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는 진아를 때리는가 하면 준희의 누나 서경선(장소연 분)을 찾아가 그에게 둘 사이를 갈라놓을 것을 종용했다.
미연은 경선에게 "그 아이들이 정 좋게 지내다 착각해서 그러는 거 같아서 그런다. 이성적으로 벌인 일 같냐”라고 말했고 이에 경선은 "저희들이 좋다는데 어쩌겠냐”고 받아쳤다. 하지만 김미연은 “준희 아직 철부지다. 잘 잡아줘야 한다. 네가 준희 인생 바르게 끝까지 책임질 거라 하지 않았냐"며 경선을 몰아세웠다. 경선은 이런 미연의 속내를 알고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극 중 미연은 경선-준희 남매에게 항상 애틋한 아줌마였고 준희에게는 살갑게 '아들'이라 불러왔다. 하지만 순간 순간 내비치는 진심 속에는 이들의 가정 환경에 대한 색안경이 있었다. 경선과 준희에게 '자신들보다 (집안이)나은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 등 일면 속물적 근성도 드러내왔던 바다. 물론 이는 '애정'과는 다른 문제일 수도 있지만, 경선과 준희 가족에 대해 무시하는 시선은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특히 미연은 진아가 결국 준희와 결혼단다면 진아가 그 배다른 동생들을 다 책임져야 할 것이란 생각도 했다. 준희를 떠올리다 그는 "언감생심 어디다가"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이렇듯 어느 정도 이중적 마음을 갖고 있던 미연은 딸이 준희와 교제하자 '내 자식 바보'의 면모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이 소중한 것도 사실이지만, 내 자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속물이 되지 않는 부모가 없다는 말도 있듯 미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어느 정도 극적으로 설정돼 있기는 하나 분명 우리 주위에서 목격할 수 있는, 아프지만 흔한 갈등이다. 그리고 소설 '로미오와 쥴리엣'의 혈투와 복수라는 해묵은 원수 문제보다 어쩌면 더 뼈아픈 현실 문제이기도 하다. /nyc@osen.co.kr
[사진]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