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았던 삶"…'은막의 여왕' 故 최은희, 오늘(19일) 발인
OSEN 장진리 기자
발행 2018.04.19 06: 20

'은막의 여왕' 故 최은희의 발인이 진행된다. 
19일 오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지병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 최은희의 발인이 진행될 예정이다. 
최은희는 지난 16일 오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최은희는 지난 2006년 故 신상옥 감독이 세상을 떠난 뒤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 신정균 감독에 따르면 고인은 신장 투석을 위해 자택 근처 병원을 찾았다가 별세했다. 

최은희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영화계는 "큰 별이 졌다"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故 최은희의 빈소에는 배우 신성일, 한지일, 윤일봉, 정혜선, 문희, 태현실, 김창숙과 임권택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원로급 영화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신성일은 폐암 투병 중에도 故 최은희의 빈소를 찾아 애통해했다. 신성일은 "최은희 선생님과 함께 작업해 본 적은 없지만, 한국 영화가 가장 좋았던 시절에 선생님 덕분에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빈소를 찾은 영화인들은 긴 시간 빈소에 머무르며 고인을 추모하는 한편, 가족들을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은희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지난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한 故 최은희는 서구형 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목받으며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새로운 맹서'(1947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상록수'(1961) '빨간 마후라'(1964) 등 수많은 영화에서 활약한 최은희는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의 한국 영화를 이끈 '원조 트로이카'다. 
최은희는 1953년 故신상옥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했다. 이후 두 사람은 '꿈'(1955), '젊은 그들'(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자매의 화원'(1959), '동심초'(1959) 등 수많은 작품을 함께 했다.
고인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으로도 유명하다.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후 최은희는 1978년 홀로 홍콩에 갔다가 한국의 한 영화사 홍콩지사장으로 둔갑한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고, 몇 개월 뒤 연이어 피랍된 故 신 감독과 북한에서 재회하게 된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아 17편의 영화를 찍었고,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 방문했다가 미국대사관을 통해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고인과 故 신상옥 감독은 해외에서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이어가다 지난 1999년 영구 귀국했다. 
故 최은희는 한국 배우 최초의 해외영화제 수상이라는 영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최은희는 북한에서 찍은 영화 '소금'으로 지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이라는 최초의 기록을 썼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인 고인은 한국의 세 번째 여성 감독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최은희는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고, 연출 및 주연을 맡았던 '민며느리'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고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은 빛바래지 않았다. 건강이 악화되기 전인 2001년에는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에는 뮤지컬 '크레이지 포 유'를 기획, 제작했다. 또한 지난 2012년에는 2회 아름다운 예술인상에서 공로예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故 최은희의 장지는 안성천주교공원묘지다. /mar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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