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은희는 한국영화사,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17살에 데뷔해 무려 13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고 이뿐 아니라 북한에 피랍됐다가 탈북, 역사 그 자체였다.
고 최은희는 지난 16일 타계했다. 고인의 장남 신정균 감독에 따르면 고인은 병원에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갔다가 세상을 떴다. 향년 92세.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하며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17살의 나이에 데뷔한 고 최은희는 미모와 연기력으로 크게 주목받으며 많은 작품에 출연,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다.
영화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고 최은희는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영화 ‘새로운 맹서’(1947)로 스크린에 데뷔해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19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
고 최은희는 1953년 고 신상옥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했다. 이후 신상옥 감독의 영화 ‘꿈’(1955), ‘젊은 그들’(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자매의 화원’(1959), ‘동심초’(1959) 등을 찍었다.
고인이 1960년대 출연한 영화 중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 ‘성춘향’(1961), ‘로맨스 빠빠’(1960), ‘상록수’(1960),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연산군’(1962), ‘로맨스 그레이’(1963), ‘벙어리 삼룡’(1964), ‘빨간 마후라’(1964) 등이다.
고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동양미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상록수’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특히 ‘빨간 마후라’는 2012년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당시 주식회사 빨간마후라에서 ‘알투비 : 리턴투베이스’ 제작, 비와 신세경 등이 출연했다.
1978년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피랍돼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몇 개월 뒤 피랍된 신상옥 감독과 영화를 제작했고 1986년 망명했다. 납북됐을 당시 고 최은희는 고 신상옥 감독과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아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총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이곳에서 제작한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의 해외 영화제 수상이었다.
고 최은희는 2010년 대종상영화제 영화발전공로상을 수상했는데 “17살 소녀시대에 연예계에 입문해서 연극으로 라디오드라마로 TV드라마로 영화에서 한평생 오로지 한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배우로서의 위상과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의 말대로 한평생 오로지 한길을 걸었던 최은희. 그가 남은 130여편의 명작은 두고두고 영원히 회자될 작품들이다. /kangsj@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