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에서 이성욱은 얄미운 캐릭터였다. 얄미움을 넘어 ‘밉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극 중 김남주의 동기로 등장했던 그는 김남주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모습이 어찌나 얄미운지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이성욱은 최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극본 제인, 연출 모완일)에서 고혜란(김남주 분)에게 앵커 자리를 뺏기고 뉴스 컷이나 넘기면서 일한 지 7년이나 된 일명 웅팀장 역을 맡아 열연했다.
동기 고혜란에게 밀려 뉴스데스크에 한 번 앉지 못하고 카메라 뒤에 있어야 하는 신세였던 웅팀장은 고혜란과 만나기만 하면 신경전을 벌였다.
“웅팀장 입장에서는 고혜란이 자기 욕심만 부린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전체를 생각했을 때 뉴스팀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혼자 독단적으로 움직이니까 싫을 것 같다. 그런데 주변에서도 그렇고 가족들도 내가 아주 얄밉다고 했다. ‘너무 꼴 보기 싫다’는 댓글을 봤을 때 나도 고혜란한테 이입이 되니까 꼴 보기 싫다는 말이 공감되더라. 내가 내 캐릭터를 남 보듯 봤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다. 알아보는 분들도 많고 감사했다.”
이성욱은 웅팀장이 마냥 시청자들에게 얄밉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다양하게 고민했다. 시청자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웅팀장을 연기할 때 ‘사랑스러움’을 더했다.
“오대웅이 소리만 지른다면 밉상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했다. 시청자들이 싫어할 인물이 아니어야겠다 싶었다. 고혜란한테 계속 지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 보통 사람이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웅팀장도 부족함이 있는 사람이고 미워 보이지 않고 안쓰러워 보인다거나 조금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아야 할까 하는 점을 고민해서 연기했다.”
이성욱은 ‘미스티’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알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알아봐 주기 시작하는 게 감사하더라. 교통지옥이 싫어서 지금도 지하철,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알아봐 준다. 아주머니들이 ‘미스티’ 잘 보고 있다고 한마디 해주고 한 아저씨는 자기 동네 놀러 오라고 명함을 주면서 ‘왜 그렇게 김남주를 괴롭히냐’고 하더라. 어떤 아주머니들은 ‘그래서 범인이 누군데?’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로 모완일 감독과 인연을 맺은 이성욱은 ‘미스티’ 연출을 맡았던 모완일 감독에게 러브콜을 받았고 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이성욱을 많이 알아봤다고.
“‘뷰티풀 마인드’가 내 첫 드라마였다. 애착이 가는 작품인데 감독님이 내가 당시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하고 대본 보면서 웅팀장 캐릭터를 읽는데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때마침 아무 일도 없었고 시놉시스를 읽지도 않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이후 대본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라 감동했다. 감독님한테 감사한 마음이 제일 크다. 알아봐 주면 기분 좋다. 기분이 업된다.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 너무 재미있고 기분 좋다.”
‘미스티’는 마지막 회가 8.452%(닐슨코리아, 전국유료방송가구 기준)의 자체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첫 방송 3달 전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방송 시작하기 전까지는 스태프들이 힘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김남주, 이경영 선배님이 성격이 밝고 한 명 한 명 다 어우르면서 극을 끌고 가서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첫 방송 후 분위기가 더 좋았다. 성적도 좋았고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너무 좋다고 했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이성욱이 돋보였던 장면은 김남주와 대립하는 신이었다. 극 중 대놓고 고혜란을 ‘디스’하는 장면은 저렇게까지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긴장감 넘쳤다.
“김남주 선배님과 연기할 때는 떨렸다. 나에게는 슈퍼스타이고 함께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는데 선배님이 긴장감을 바로 풀어주더라. 선배님이 나를 술 마실 때만 봐서 몰랐는데 연기하는 모습이 되게 괜찮다고 말해줬다. 정말 크게 감동하고 그다음부터는 연기하고 싶은 대로 연기했다. 그래서 김남주 선배님과 연기하는 게 맛있고 재미있었다. 선배님이 내 연기를 잘 받아줘서 연기하는 맛이 있었다. 정말 존경한다.”
‘미스티’에서 이성욱은 유독 김남주와 호흡을 맞추는 장면이 많았다. 아무래도 극 중 웅팀장과 고혜란이 동기인 것이 큰 이유였는데 두 캐릭터가 치열하게 대립하기도 했지만 극 후반에는 웅팀장이 고혜란을 응원, 원수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풀렸다.
“김남주 선배님은 단순히 배우로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거의 완벽하게 연기한다는 느낌이 있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이 굉장히 쾌활한데 그 속에는 진중함이 있다.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을 놓치지 않고 다 챙긴다. 그런 면을 봤을 때 그냥 연기자가 아니구나.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성욱이 ‘미스티’의 뉴스룸에서 호흡을 맞춘 또 다른 배우는 이경영이었다. 드라마에서는 보도국장 역을 맡아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웅팀장에게 한 소리 하는 캐릭터였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고. 이성욱은 이경영을 향한 진한 존경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경영 선배님은 모두의 형이다. 이경영 선배님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선배님에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선배님 연기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는데 너무 쾌활하고 유쾌하더라. 평상시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모두 ‘형님 형님’ 하면서 따랐다. 내가 이경영 선배와의 케미스트리가 좋다 나쁘다 판단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이경영 선배님과의 케미스트리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선배님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라고 했다. 사람이 마음을 열고 연기할 수 있게 도와줘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브로맨스가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미스티’에서 배우들의 케미스트리 만큼 화제가 됐었던 건 결말이었다. 마지막 회에서 하명우(임태경 분)가 케빈리(고준 분)를 죽인 강태욱(지진희 분) 대신 벌을 받고 고혜란(김남주 분)은 자신 때문에 강태욱이 케빈리를 죽였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그런 가운데 강태욱이 자살을 암시하는 엔딩으로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나는 대본 보고 결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배우들끼리는 최고라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방송으로 봤을 때도 최고였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강태욱이 갑자기 죽어서 놀랄 수 있었을 것 같다. 욕망이 파멸로 간다는 게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좋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뻔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거나 행복하게만 살아가는 것보다는 좋았다.”
‘미스티’로 자신을 알리기 시작한 이성욱. 그는 ‘사람 냄새 나는 배우’, ‘마음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다. 무엇보다 ‘건강한’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연기에 임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이다.
“꾸준히 가지고 있는 목표인데 진짜 마음만 가지고 연기를 하자는 생각이다. 만들어내지 말고 진심을 담아 연기하고 싶다. 그래야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람 같은 배우가 되는 게 목표다. 그리고 공연이건 매체건 꾸준히 인간을 표현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솔직히 잘 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어 국민배우가 되고 싶다. 그런데 그건 사람 됨됨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김남주 선배든, 이경영 선배든 존경받는 선배들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인간적이고 정신이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그런 마인드를 배웠다. 정신이 건강해야 하고 사람다워야 한다는 걸 느꼈다.” /kangsj@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