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③에 이어) 배우 임수정이 결혼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했다. 그녀의 대답은 차분했지만 생각은 확고했다. 일부러 결혼을 미룬 것이 아니라,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만든 남자를 못 만났다는 것이다.
임수정은 11일 서울 명동 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엄마 역할을 소화하는 것은 이번 영화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다. (효진이)부탁을 받고 분명 고민이 됐을 텐데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으로 아들을 맡았다. 제가 그 과정을 하면서 '관객들을 어떻게 납득시킬까?'하는 고민을 이동은 감독님과 나눴다”라고 캐릭터를 소화한 과정을 전했다.
이어 임수정은 “효진을 맡으며 '내가 진짜 이 아이의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보다 죽은 남편의 아들이니까 그냥 데리고 오자는 생각을 했을 거 같았다”며 “약간의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증상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을 저지르고 보는 거라더라. 그걸 감독님과 자주 이야기 했고 저 역시 동의하며 (아이를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효진의 심리상태가 그 결심을 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제가 봐도 다행히 영화를 볼 때 이상하다거나 억지스럽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말했다.
‘당신의 부탁’은 영화제작사 명필름이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새 인물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설립한 명필름랩 출신 이동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명필름랩 1기 작품인 ‘환절기’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이 감독은 명필름랩 졸업 후 본격적으로 명필름과 두 번째 작업하게 됐다.
임수정은 이동은 감독에 대해 “이 감독님의 스타일은 영화에 자세한 설명을 넣지 않는다는 거다. 전작 '환절기'를 봐도 이렇다 저렇다 자세한 설명을 하거나 이건 이래서 이렇게 된 거라는 설명을 안 하더라. (영화를 보며)조금 더 갔으면 좋겠다 싶은데 툭 끊길 때가 있다”면서 “감독님의 스타일이 나쁘진 않다.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가족이 있고 굳이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모자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이 영화는 엄마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아들에게 법적 엄마로 남겨진 효진(임수정 분), 자신이 기억하는 친엄마를 찾아나선 종욱(윤찬영 분). 다시 만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상실의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이 돌연 가족이 되고 통과의례와도 같은 애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낯설었던 이들의 관계도 서서히 변화를 겪게 된다.
“제가 엄마가 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여성으로서 현실적인 고민을 한 거다. 제가 당장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가능한 건데 그게 아니지 않나. 제가 언제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지 알 수 없는 거다. 이 영화를 하면서 그걸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 어떤 엄마가 될지는 모르겠다. 그냥 제가 생각하는 건, 가정과 자식에 헌신하는 저희 엄마처럼은 못 될 거 같다(웃음). 단순히 결혼을 해야겠다 말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이 사람과는 결혼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지 않나. 다만 저는 그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게 언제가 됐든, 할 수 있을 거 같다. 아직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못 만났다. 언젠간 만나지 않을까 싶다.”
‘당신의 부탁’은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슬픔과 새롭게 맺은 가족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회복의 과정을 진정성 있게 풀어냈다.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아들 종욱의 법적 엄마 효진 말고도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한다. 이처럼 엄마들의 모습을 통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혈육으로서의 '엄마'가 아닌 더 넓은 의미로써 엄마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효진과 종욱의 관계를 통해 ‘낯선 엄마에서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 성장과 선택’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야기와 더 나아가서는 가족의 역할에 대한 의미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다./ purplish@osen.co.kr
[사진] CGV 아트하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