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상상력에 놀랐다. '신의 토로'에서는 만물의 창조주인 신을 갈팡질팡 후회도 많이 하는 존재로 그렸고, '서울에 산다'에서는 서울을 지하철 2호선처럼 빙글빙글 잘도 도는 도시로 그렸다. 사운드는 담백하고 산뜻하다.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 한 한국적 포크의 숨결이 꿈틀댄다. 올해 3인 체제로 정비, 바로 오늘(29일) EP ‘서울에 산다’를 발매한 밴드 자그마치다.
자그마치는 2016년 12월7일 ‘극세사이불’ ‘코뿔소’ ‘별 말’ 3곡이 담긴 싱글 ‘코뿔소’를 내며 데뷔했다. 이 때 멤버는 보컬 김진목(최근 김태결로 개명)과 베이스 조성일, 기타 권대윤이었다. 2017년 10월5일에는 싱글 ‘우리는’을 냈는데, 김진목 조성일 권대윤에 윤효근이 드러머로 합류했다. 이 4인 멤버로 12월28일 싱글 ‘만선’, 2018년 2월14일 싱글 ‘신의 토로’를 낸 자그마치는 이후 윤호근 권대윤이 나가고 올해 새 기타리스트로 정소리를 영입했다(사진 왼쪽부터 정소리 김태결 조성일) .
= 본인 소개부터 부탁드린다.
(김태결) “86년생이며 곡을 쓰고 노래하는 김태결이다. 원래 이름은 김진목이었는데 지난주에 개명신고를 했다. 배우와 연출이 꿈이었지만(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입대를 앞두고 일종의 추억만들기 삼아 참가한 2013년 제6회 청계천 대학가요제에서 덜컥 대상을 받는 바람에 인생이 바뀌었다. 군대에서 선임이랑 밴드 결성 이야기를 나눴고, 사이버 지식 정보방에서 수소문 끝에 베이스를 치는 조성일을 만났다. 휴가 때마다 만나서 연습을 했고 전역후 본격활동에 나섰다.”
= 어떤 곡으로 대상을 받았나.
(김태결) “김진목 트렘펄린(혼성 5인조)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양치기 소년’을 불렀다. 재미난 구성에 점수를 주신 것 같다.”
(조성일) “90년생이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밴드를 할 때는 일렉기타였지만 여섯줄 치는 게 너무 어려워 베이스로 바꿨다(웃음). 전문대 컴퓨터공학과 진학 후 사운드홀릭 클럽에 취직, 조명일도 하고 무대 테크니션 일을 하다가 ‘한번뿐인 인생인데’라는 생각에 실용음악과로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군대도 악대를 갔다왔고, 전역 후 연습하는 중에 김태결 형한테 연락이 왔다. 인터넷에 음악을 하고싶다고 글을 올렸는데 형이 구글링과 페이스북을 타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처음에는 김태결 형의 선임이 휴가 때 나와 만났고, 두번째 만난 바로 다음날에는 신촌에서 공연까지 했다.”
= 그때 밴드 이름이 이미 자그마치였나.
(조성일) “맞다. 2015년 6월 일이다. 김태결 형은 그 해 9월에 전역했다. 자그마치 첫 시작은 5인조였다. (김)태결 형, 형의 군선임, 저, 그리고 기타의 권대윤, 권대윤의 학교 동기인 드러머, 이렇게 5명이었다. 2015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오픈밴드에도 이 멤버로 참여했다. 이후 군선임은 당시 유학중이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드럼도 나가는 바람에 데뷔싱글은 3명이 참여했다. 드럼은 객원으로 썼다.”
(김태결) “나이는 저보다 어렸던 군선임과 밴드를 하기로 하고, 밴드 이름을 자그마치(ZAGMACHI)로 정했다. 이 험한 세상에 자그마치 밴드를 하고 있다, 이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정소리) “프로 세션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는 88년생 정소리다. ‘내가 살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스무살 때 음악을 본격 시작했다. 군 제대 후 서울예대에 들어갔고 재학 중에 프로 세션의 길이 트였다. 지금까지 200여곡 녹음한 것 같다. 라이브도 많이 했고. (김)진목이 형, 아니 (김)태결이 형은 친한 친구 소개로 알게 됐다. 형의 음악을 들려줬는데 꽤 짜임새가 있었다. 그래서 올 초에 처음 만났는데 서로 추구하는 음악이나 마인드가 맞았다. 저는 서양악기로 한국적 정서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던 차였고, 자그마치는 마침 자리가 하나 빈 상태였다.”
= 그러면 정소리씨는 새 EP ‘서울에 산다’에 참여했나.
(정소리) “아니다. 이번 EP는 기존 멤버들(김태결 조성일 권대윤 윤효근)이 참여했다.”
(김태결) “정소리가 합류했을 때는 이미 앨범이 완성된 상태였다.”
= 앨범 재킷이 만화풍이다.
(김태결) “‘우리는’부터 제가 디자인을 해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6곡이 담긴 첫 EP인데다 주변에서 ‘이 노래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어떤 계기로 썼나?’ 자주 물어보셔서 한번에 설명해줄 그림을 그리게 됐다. 저의 청소년기 낙서를 다 모아봤다. 사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 입시준비를 하기도 했었다. 인디밴드를 다룬 만화 ‘BECK’을 너무 좋아한다.”
= 새 열범을 함께 들어보자.(EP에는 신곡 ‘만지고 갔네’와 ‘서울에 산다’ '양치기 소년'을 비롯해 기존 발표곡 ‘신의 토로’ ‘우리는’ ‘만선’, 이렇게 6곡이 담겼다) 첫 곡은 ‘만지고 갔네’인데 처음부터 에너지가 넘치는 연주다.
(조성일) “전주가 긴 것이 저희 특징이다.”
(김태결) “첫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처음 연애했던 여성분과 처음 신체적 접촉이 있었던 기억, 당황했던 기억을 더듬어봤다.”
(조성일) “사운드적으로는 처음에는 메이저 성향의 빠른 포크송을 생각했는데, 좀더 공격적인 마이너 리프를 갖고 왔더라. 그래서 산울림 같은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넣게 됐다.”
= 타이틀곡 ‘서울에 산다’는 상실의 감성이 돋보인다. ’없어서 울며’(‘서’와 ‘울’이 합쳐지면 서울로 들린다) 같은 말장난도 재미있다.
#. ‘서울에 산다’ 가사(부분)
서울 이렇게 아름다운 서울 잘도 돈다
이곳은 서울 그래도 떠날 순 없어서 울며 잠든다
잊어버릴 것 같은 밤 아침이 오긴 멀었는데
너무나 시끄러워 다리가 녹아버린 것 같아
암만 해도 일어날 수 없어라
누가 좀 도와줘 커튼 아래 춤추는 먼지만이 가득한 방안에
나 홀로 천장이 빙글 시계는 돌아가네 빙글
지하철 2호선도 빙글 차댈 데 없어 계속 빙글 빙글 도는
이곳은 서울 이렇게 아름다운 서울 잘도 돈다
이곳은 서울 그래도 떠날 순 없어서 울며 잠든다
(김태결) “가사를 쓰다가 재미있겠다 싶으면 쓴다.”
= 멤버들한테 서울은 어떤 곳인가.
(김태결) “저는 완전 서울 촌놈이다. 지금도 서울에 살고 있지만 1년마다 건물과 동네가 바뀌는 바람에 딱히 고향에 대한 이미지가 없다.”
(조성일) “현재는 (경기도) 광명에 살지만 고향은 서울이다. 따뜻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도시다.”
(정소리) “개미지옥 같다. 먹고 살려면 서울에 있어야 하지만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다. 지금은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다.”
(김태결) “서울은 애증의 도시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징글징글한 곳.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다. 자그마치는 앞으로도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이나 양가적 감정을 노래하고 싶다.”
= ‘신의 토로’는 가사도 뮤직비디오도 재미있게 듣고 봤다. 사운드가 마치 웨스턴 무비 OST 같다. 전체적으로는 장기하 느낌도 든다.
#. ‘신의 토로’ 가사
한 번은 고래를 만들었는데 조그맣고 귀엽게 만들려했는데
그만 커버린거야 너무 커져버린거야 이걸 어쩜 좋아
숲에선 나무에 끼어버리고 하늘에서 살기엔 맞는 날개가 없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너의 운명
가거라 바다로 알아서 잘 살아보거라
한 번은 남자와 여자를 불러 양쪽 하늘을 지키라 했는데
둘이 좋아한거야 서로 사랑한거야 이걸 어쩜 좋아
남자는 날마다 소리 지르고 또, 여자는 그리움에 밤새 목 놓아 우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너희 운명
가거라 땅으로 둘이서 잘 살아보거라
세상을 만든지 일주일이 안 돼 너무나 많은 것 저질러 버렸네
계절은 일 년에 네 개나 만들었고 낮과 밤도 매일매일 바꿔야되네
하늘엔 먹구름과 번개가 내려치고 폭발해버린 화산은 대지를 덮쳤네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감당이 안 돼 그렇다고 이 내가 어디 기도할 데도 없잖어
인간에게 감성 이성과 자유를 건네주고 온 세상을 잘 가꿀 것이라 난 믿었었는데
이놈들 온 땅 위의 생명은 죄다 다 따먹고 이거 해달라 저거 달라 졸라 졸라대는데
나 이제 가노라 이제는 너희가 알아서 잘 살아보거라
(김태결) “처음 만들 때부터 스산한 서부에서 석양이 지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태초에 태어난 뭔가가 석양으로 사라져가는 이미지를 넣고 싶었다.”
= 왜 하필 고래인가.
(김태결) “고래에게는 제일 큰 동물이라는 상징이 있다. 또한 영화 ‘헤드윅’에 보면 고래의 다리를 자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원곡에는 닭 이야기가 들어가 있어서 지금보다 더 길었다. ‘여우가 알을 계속 깨먹으니 닭에게 달걀을 단단하게 만들라고 했는데, 너무 단단하게 낳는 바람에 병아리가 못태어나더라. 그래서 나쁜 머리를 줬다’ 이런 내용이었다(웃음). 어쨌든 이 곡은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그 책임은 인간 스스로가 져야한다는 내용이다. 신에게 미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소리) “이 곡을 합주해봤는데, 서사적이고 스토리가 재미있어 어떨게 풀어갈지 궁금했었다. 참신했다.”
(조성일) “뮤직비디오는 지난해 여름 고양에 있는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에서 찍었는데 전문배우들이 출연해주셨다.”
(김태결) “극단 대표랑 아는 사이인데다 배우들과도 친한 인연이 있었다. 다행이 외국반응도 좋았다.”
= ‘양치기 소년’은 어떻게 탄생했나.
(김태결) “개명 전 이름인 진목이 ‘진실한 목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양치기 소년 얘기를 쓰게 됐다. 양치기 소년 입장에서는 장난친 것일 수도 있는데 어른들이 무더기로 와서는 몽둥이찜질까지 했다. ‘더이상 춤추거나 풀피리 불지말고 그냥 너의 길을 가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양치기 소년은 소년과 어른의 경계이자, 비자본과 자본의 경계인 셈이다.”
(조성일) “이 곡은 코드진행이 계속 바뀌며 분위기가 점점 고조된다. 컨트리 느낌을 담고 싶어 초반에 벤조를 집어넣었다.”
= 아, 조성일씨는 어떤 베이스기타를 쓰나.
(조성일) “에프베이스(F Bass)라는 회사의 BN5 모델을 쓴다. 재즈 베이스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감각의 소리를 내준다. 자그마치의 포크음악에 잘 어울린다. 페둘라(Pedulla)의 MVP 모델도 쓰는데, 1990년대 세션이라면 꼭 갖고 있었던 악기다. 써보니 진가를 알게 됐다.”
(정소리) “저는 메인은 존써(John Suhr)라는 회사에서 나온 클래식 앤틱 시리즈를 쓴다. 모던과 빈티지가 공존하는 그런 사운드를 들려준다. 탐앤더슨의 드롭탑이라는 기타도 쓴다.”
(김태결) “마틴 통기타를 쓰는데 아직 전문 지식이 없다. ‘우리는’에서 직접 연주했다. 이 곡은 4인조 밴드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짜임새 있는 편곡이라고 본다. 제가 박자도 많이 틀리고 했지만, 이렇게 모자란 부분이 오히려 곡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 ‘만선’은 마치 타이타닉호가 출발 직전에 힘찬 뱃고동 소리를 내는 것 같다.
(김태결) “이 곡은 제 연극동아리 후배들의 연극 제목 ‘만선’에서 영감을 받았다. 저희 노래가 어둡거나 메시지가 강한 편인데, ‘만선’에서는 밝고 희망찬 곡을 쓰고 싶었다. 대표 가락은 초창기 멤버였던 군대 선임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편곡을 거쳐 나왔다.”
(조성일) “공연 마지막은 항상 이 곡으로 한다. 곡을 시작할 때 드는 벅찬 느낌이 좋다. 한국적 요소를 잘 풀어낸 것 같다. 시원시원한 고음의 보컬 매력도 잘 드러났다.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곡이다.”
=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한다고 들었다.
(김태결) “4월7일 토요일 오후7시 벨로주 망원에서 한다. 시간 되시면 꼭 와달라.”
= 올해 활동계획은. 그리고 자그마치는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줄 것인가.
(김태결) “(정)소리가 합류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마음을 다잡고 더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이번에는 얘네들이 무슨 음악을 할까’ 궁금증이 드는, 자그마치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조성일) “경력에 비해 멤버가 많이 바뀐 편인데 밴드에서 중요한 것은 연주와 보컬 실력 뿐만 아니라 밴드에 대한 애정, 같이 임할 수 있는 자세라고 본다. 그리고 정소리가 와서 든든하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포크음악이 설자리고 없다고들 하시는데, (지금은 단절되다시피 한) 포크음악의 계보를 잇는 그런 밴드가 되고 싶다. 일본의 미스터 칠드런처럼 오래 사랑받는 포크밴드가 되고 싶다.”
(정소리) “자그마치의 매력은 한국적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저희가 서양악기를 빌려 연주하지만 그 소리에서 우리 것을 찾고 싶다. 와서 보니 자그마치는 가사가 상당히 철학적이고 깊이가 있다. 요즘 패스트 뮤직과는 다르다. 제가 나이 70이 되어 무대에서 자그마치 음악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 kimkwmy@naver.com
사진=민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