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1군 엔트리는 총 27명까지 등록할 수 있다. 27명의 선수 중 자신의 임무가 없는 이들은 없다. 스페셜리스트의 필요성은 꾸준하다. 비주전 선수들이 경기 후반에 들어가 흐름을 바꿔 놓거나 경기에 종지부를 찍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SK 외야는 전쟁터다. 주전 후보로 뽑히는 선수만 여럿이다. 장타력에서 매력을 갖춘 한동민과 김동엽, 종합적인 타격 완성도가 가장 높은 정의윤, 빠른 발과 수비를 장점으로 하는 노수광과 김강민이 있다. 강견인 외국인 선수 제이미 로맥도 우익수를 소화할 수 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진기(26)와 김재현(31)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정진기와 김재현이 트레이 힐만 감독의 머리를 더 아프게 하고 있다. 가진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확고한 주전으로 볼 수는 없다. 정진기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김재현은 올해 1군의 1·2차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했다. 일단 힐만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경기 중·후반 활용성이 무궁무진하다. 정진기는 공·수·주 3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다. 김재현은 주루와 수비에서는 리그 최정상급의 선수다. 두 선수 모두 경기 막판 다양한 쓰임새를 가졌다.
13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NC와의 경기는 상징적이었다. SK는 경기 후반까지 타선이 침묵하며 끌려갔다. 8회까지 0-4로 뒤졌다. 하지만 1-4로 뒤진 상황에서 반전이 나왔다. 김동엽이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쳤는데 여기서 대주자 김재현이 그대로 홈에 들어왔다. 대개 주자 1루에서 득점이 나기 위해서는 안타 2개나, 혹은 홈런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재현은 안타 하나의 필요성을 발로 지웠다.
김재현은 “타구를 보는 순간 당연히 홈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3루 베이스를 맡은 정수성 코치도 “그 타구에 득점할 수 있는 선수가 우리 팀에서는 몇 되지 않는다. 김재현 정진기 최민재 김강민 정도다. 그런 선수가 경기 후반에 있다는 것은 주루코치로서는 큰 도움이 된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힐만 감독도 “필요로 할 때 대주자로 자신의 몫을 잘 해줬다. 중요한 상황에서 팀의 스피드를 끌어올렸다. 희생번트(9회)도 잘 대며 팀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줬다”고 칭찬했다. 김재현을 특별히 구상에 넣지 않고 있는 힐만 감독이지만, 팽팽한 승부에서 김재현의 발이 미치는 영향을 실감했을 대목이었다. 당장 개막 엔트리는 아니어도 추후 1군 진입 가능성에 포인트를 쌓은 셈이다.
정진기도 찬스에 빛났다. 이날 경기 후반에 들어간 정진기는 5-4로 앞선 9회 1사 2,3루에서 임창민을 상대로 우익수 키를 넘기는 쐐기 2타점 2루타를 쳤다.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계속 커트를 하며 버틴 끝에 값진 성과를 만들었다. 정진기는 14일 경기에서도 첫 타석에서 희생플라이를 치는 등 시범경기지만 괜찮은 출루율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보다 확실히 나아진 지점이다.
정진기는 펀치력은 물론, 수비와 주루에서도 가치가 크다. 중견수 수비까지 소화할 수 있다. 발도 빠르다. 정 코치는 “차고 나가는 힘이 굉장히 좋다. 그 측면은 우리 팀 1위라고 봐도 된다. 어깨도 좋다”고 칭찬했다. 다양한 쓰임새를 가졌기에 역시 주전급 백업으로는 이만한 선수가 없다는 게 전체적인 평가다. 현재 기세를 이어간다면 앞선 선배들을 제치고 개막 엔트리에 승선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