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뛰었던 친정팀을 떠났다. 새 팀에 합류해 훈련을 함께한 건 이제 막 한 달 반이다. 하지만 강민호(33·삼성)에게 적응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사령탑은 그에게 타선, 배터리는 물론 벤치의 리더까지 기대한다.
강민호는 롯데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첫 프리에이전트(FA) 때도 강민호는 4년 총액 75억 원에 롯데 잔류를 선언했다. 당시 타 구단에서 '100억 이상 실탄을 장전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강민호를 구경조차 못했다. 강민호는 계약 첫해 부진했지만 이후 3년간 롯데의 상징다운 모습을 선보였다.
그런 강민호가 두 번째 FA 때 팀을 옮겼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본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강민호는 삼성맨이 됐다. 삼성에서도 입단식부터 그를 팀 간판으로 포장했다. 물론 강민호는 그런 포장 없이도 삼성의 간판으로 이미 자리매김 중이다.
경기장 안에서는 당연하다. 13일부터 이틀간 수원에서 kt와 시범경기 개막 2연전을 치른 김한수 감독은 강민호 기용법에 힌트를 줬다. 김 감독은 강민호를 5~6번 타자로 생각 중이다. "박해민과 김상수를 테이블세터로 생각 중이다. 그 뒤를 구자욱과 다린 러프, 이원석, 강민호로 생각 중이다. (이)원석이와 (강)민호는 유동적이다. 민호가 5번을 맡으면 좋지만, 포수라 부담이 있다. 원석이가 5번타순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올라와주는 게 최상이다". 강민호는 8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 중인 포수다. 20홈런-80타점을 기대하는 건 '상수' 정도다. 삼성으로서는 지난해 24홈런-87타점을 기록한 이승엽이 은퇴했지만 타선에서 생긴 공백을 강민호로 메운다는 복안이다.
강민호를 향한 기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포수'로서의 강민호는 타자 이상의 가치다. 의미 있는 장면 하나. 삼성은 13일 시범경기 개막전 선발투수로 양창섭을 내세웠다. 이날 양창섭은 볼이 많았다. 초구는 물론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변화구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 우타자 몸쪽으로 적극적인 승부를 펼치는 게 인상적이었다. 고졸 신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적장' 김진욱 kt 감독은 이를 '강민호 효과'로 분석했다. "물론 포수가 사인을 내도 투수가 던지는 게 중요하다. 아니면 의미없다. 하지만 양창섭이 데뷔전임에도 좋은 모습 보인 건 강민호의 역할이 컸다"는 게 김진욱 감독 설명이다. 김한수 감독도 동의했다. 김 감독은 "강민호는 타자, 포수로 모두 능력이 검증된 선수다. 직접 보니까 역시 다르더라"라고 감탄했다.
김 감독의 시선은 '타자', '포수' 강민호 이상을 향하고 있다. 벤치 리더다. FA로 이적해온 첫 해부터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 대상이 강민호이기에 가능한 포석이다. 김한수 감독은 "캠프 처음부터 융화도 잘 됐다. 밝은 선수다. 팀 분위기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실 지난 몇년간 우리 팀 분위기가 침체됐다. 벤치에서 파이팅을 내며 라커룸 리더 역할을 해줄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강민호는 두 번의 시범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 2삼진에 그쳤다. 그러나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강민호가 삼성의 기대를 십분 수행한다면 팀은 2년 연속 9위 굴욕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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