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 끔찍했던 기억을 세상에 알렸고 가해자의 응당한 처벌을 바랐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이제 허공을 맴돌게 됐다.
지난달부터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인 조민기의 성추문을 제자들이 앞다투어 폭로하기 시작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활발하게 퍼져나간 미투 운동 덕분이었다.
시작은 익명글이었고 여기에 불을 지핀 이는 연극 배우 송하늘이었다. 그는 20일 "조민기 교수의 성추행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수위 높은 폭로를 펼쳤다.
이들의 용기에 더 많은 폭로자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민기에게 직접 추행을 당한 여제자들은 물론 이를 지켜본 남학생들도 힘을 보탰다. 결국 조민기는 초반 부인하던 입장을 뒤집고 성추문에 휩싸인 지 8일 만에 사과문을 냈다.
그런데 이 사과문이 유서가 됐다. 조민기는 논란에 휩싸인 지 18일 만인 지난 9일, 자신의 주거지인 광진구의 한 아파트 지하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그는 숨을 거두었다.
앞서 남긴 심경글에서 조민기는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잘못입니다"라며 "제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시간들이 지나다보니 회피하고 부정하기에 급급한 비겁한 사람이 됐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했다.
또 그는 자신 때문에 상처 받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며 잘못에 대해 법적 사회적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조민기는 경찰 조사를 사흘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이 약속마저 저버렸다.
조민기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누리꾼들은 그의 성추문을 폭로한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송하늘은 이 비난을 직격으로 맞았다. 그의 SNS에는 악플이 여럿 달려 있다.
직접적인 사과는커녕 뜻밖의 비난을 받게 된 피해자들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남은 유족들 역시 아프긴 마찬가지. 가장을 잃은 슬픔과 불명예스러운 죽음에 유족들은 모든 장례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하겠다며 마음을 닫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그가 남겨놓은 아픔은 여전하다. 경찰은 피의자가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고 밝혔지만 성추문의 피해자들과 고인의 유족들은 더 아픈 시간을 보내게 됐다. /comet568@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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