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타율은 낮았다. 리그 전체 선발투수를 통틀어서도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그 피안타율과 성적이 정비례하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많은 사사구 탓이라고 했다. 실제 박종훈(27·SK)은 2016년 140이닝에서 무려 114개의 사사구를 내줬다.
모두가 “사사구를 줄이면 박종훈은 더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 제구를 정교하게 가다듬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종훈도 그런 쪽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한때는 구체적인 볼넷 수치를 정해놓기도 했다. 의식적으로 볼넷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뿐 정답은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박종훈은 이미 제구가 좋은 투수였기 때문이다.
박종훈의 폼은 독특하다. 리그에서 가장 낮은 타점에서 공을 던지는, 정통 중의 정통 언더핸드다. 외국인 타자들이 “저 폼에서 어떻게 공을 던지나”라고 모두 놀랄 정도다. 하지만 그런 폼에서는 어차피 수준급의 제구력을 보여주기가 어렵다. 눈과 손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염경엽 SK 단장은 “박종훈의 제구가 좋지 않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 저 폼으로 저 정도 제구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는 지구상에서 박종훈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박종훈은 2017년 29경기에서 12승7패1홀드 평균자책점 4.10을 기록하며 데뷔 후 첫 10승 고지를 밟았다. 151⅓이닝을 던져 개인적인 첫 목표였던 규정이닝 진입에도 성공했다. 연봉도 2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그런 박종훈은 성공 비결로 “제구가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제구가 어차피 확 좋아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볼넷을 세금처럼 주는 대신, 다른 측면에서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로 했다.
볼넷 비율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리그 평균에 비하면 많았다. 탈삼진 수치는 전년에 비해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공끝을 가다듬고, 최대한 타자들의 방망이를 유도할 수 있는 로케이션을 연구했다. 역설적으로 볼넷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자 제구도 조금씩 나아졌다. 박종훈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12승이라는 단순한 수치 외에 얻은 것이 컸던 2017년이었던 셈이다.
소중한 2017년을 보낸 박종훈은 표정이나 투구에서 한결 여유가 생겼다. 박종훈 스스로도 “그렇게 보이느냐”라고 싱긋 웃더니 “맞다.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볼넷에 대한 생각을 다시 묻자 “이제는 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종훈은 볼넷을 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몸으로 안다.
2018년 준비도 순조롭다. 보통 언더핸드는 허리나 무릎에 부상을 달고 사는 경우가 많지만 박종훈은 “지금껏 아파본 적이 없다. 몸 상태는 좋다”고 자신했다. 목표는 너무 단순하다. 아무 생각이 없다. 내심 12승 이상을 노려볼 법도 한데, 박종훈은 “부담도 없고, 특별한 욕심도 없다. 구종적으로 더 추가하거나 잘 하려고 하는 것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저 물이 흘러가는 대로 가보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핵잠수함’에 제법 어울리는 목표일 수도 있다.
2018년 프리뷰
김광현, 외국인 투수 둘에 이은 팀의 네 번째 선발로 시즌을 시작할 것이 확실시된다. 다소간 기복은 있지만 한 시즌을 꾸준히 소화하면 10승 이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 선발 로테이션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닌, 한 시즌을 길게 내다보고 여유 있게 준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된 만큼 시즌 개막에 맞추고 착실히 몸을 만들고 있다. 치기 까다로운 공임은 자타가 공인한다. 급격하게 무너지지 않는 이상 두 자릿수 승수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내친 김에 6회 이상을 자주 소화하는 투수가 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들의 관심이 더 커질 것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