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당황스러웠다. 믿었던 선수의 구위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마무리를 맡길 생각이었던 코칭스태프는 심각한 회의를 거듭했다. 선수 스스로도 자신의 공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공이 생각보다 나가지 않았다.
지난해 SK의 1차 플로리다 캠프 당시 가장 화제가 된 선수는 좌완 박희수(35)였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구상에서 박희수는 개막 마무리였다. 어깨 부상에서 돌아온 박희수는 2016년 51경기에서 26세이브, 평균자책점 3.29를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한 차례 위기를 딛고 일어섰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전지훈련에서 구위가 올라오지 않았고, SK는 불가피하게 뒷문 구상을 수정했다. 박희수를 잃은 뒷문 고민은 시즌 내내 해결되지 않았다.
KBO 리그 통산 평균자책점이 2.94에 불과한 박희수다. 리그 최고의 좌완 셋업맨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48경기에서 2승6패8세이브9홀드 평균자책점 6.63에 머물렀다. 유독 운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구속이 떨어져 타자들과 어려운 싸움이 계속됐다. 박희수는 “중심이 낮아지고 무너졌다. 팔이 넘어오는 시점부터 각이 나오지 않았다. 주무기가 투심패스트볼인데 타자들의 속는 비율이 확실히 줄었다. 공을 잘 보고 있거나, 안 속는 경우가 많더라”고 부진의 이유를 짚었다.
어깨 부상 전에는 꾸준히 140㎞ 이상을 던졌던 투수다. 당시에는 변화구가 아닌, 빠른 공으로도 충분히 타자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상 이후 구속은 130㎞대로 내려왔다. 지난해는 2016년보다 더 떨어졌다. 스스로부터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박희수는 “이제는 구속과 구위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가 없다. 제구과 경기운영으로 싸워야 하는데 다 흔들렸다. 제구도, 심리적으로도 모두 그랬다. 운까지 따라주지 않으니 너무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이처럼 시작부터 당황해 당황으로 끝난 2017년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했다. 시즌 직후부터 강화SK퓨처스파크를 찾아 몸 만들기에 매진했다. 다행히 보완점은 명확했다. 투구폼을 정비했다. 박희수는 “폼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상체와 하체를 좀 더 세워서 버티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박희수는 어깨 부상으로 그 떨어지는 속도가 남들보다 더 빨랐다. 모두가 자신의 전성기를 생각하며 미련을 두기 마련이지만, 박희수는 그 예전과 빨리 단절하기로 했다. 박희수는 “예전 같으면 힘으로 승부해도 게임이 됐다. 그러나 이제는 안 된다”고 인정하면서 “제구와 수싸움을 잘 하려면 경기에 더 집중하고 긴장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리그 최고의 셋업맨이라는 수식어는 다 잊었다. 이제는 신인처럼 매 상황에 집중하고 전력투구를 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이야기한다. 다행히 투구폼 교정 등이 효과를 보고 있다. 몸 상태도 좋다. 구속은 여전히 130㎞대에 머물고 있지만, 그 구속으로 살아남기 위한 공부도 철저히 한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공을 믿지 못해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너무 어렵게 승부하기보다는 공격적인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겠다는 각오다.
심리적으로도 더 편해졌다. 지난해 부진으로 기대치가 떨어진 것이 오히려 약일까. 중압감에서 다소 벗어났다. 박희수는 “작년에는 너무 못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내려갈 곳도 없고, 더 못할 것도 없다. 그런 면에서는 마음이 편하다”면서 “쓴맛을 봤지만 그것이 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웃었다. 생각을 바꾼 박희수의 생존 비법이 이제 선을 보인다.
2018년 프리뷰
한때 좌완 왕국이었던 SK지만 지금은 예전에 비해 양질 모두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왼손 계투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박희수가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 여전히 가장 믿을 만한 투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구속이 예전을 되찾는 기적은 없을 것이다. 결국 제구와 2스트라이크 이후의 결정구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다행히 가진 것이 많은 투수다. 흔들린 제구를 다잡고 투심패스트볼의 위력만 되돌린다면 충분히 필승조 요원으로 활약할 수 있다. SK의 마무리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다. 박희수가 2016년 정도의 안정감만 찾는다면, 마무리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