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자들의 용기낸 실명 공개가 결국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던 이들의 '공식 사과'를 받아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만큼이나 폭로자들은 글을 쓰면서 고통스럽고 처절한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리고 그 폭로를 지켜내는 것은 그보다 몇 배의 힘이 든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폭로글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글을 금세 삭제해버린다면 폭로는 힘을 잃고 만다. 글을 공개한 후 쏟아지는 반응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 밀려오는 두려움 때문 등 삭제의 이유는 충분하지만 '폭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글을 삭제하고 숨는 대신 용기를 내 자신의 실체를 공개한 이들이 세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절대 아니"라고 부인하던 배우들이 실명을 내건 피해자들의 목숨 같은 폭로에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28일 배우 오달수가 끝내 공식 사과했다. 앞서 '익명'의 댓글임을 강조하며 "성추행은 없었다"라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부인하던 그는 연극배우 엄지영이 JTBC '뉴스룸'과 가진 인터뷰를 접한 후, 그 다음 날 "전부 제 탓이고 저의 책임"이라고 시작하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오달수는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는 않고 인터뷰의 내용과 제 기억이 조금 다른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런 일이 결코 없었다'라고 주장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피해자라고 밝힌 A씨와 연극배우 엄지영에게 각각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앞서 조재현의 공개 사과에는 처음부터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며 폭로글을 올린 배우 최율의 영향이 컸고, "루머일 뿐"이라고 부인하던 조민기는 배우 송하율 등이 실명을 내건 폭로글을 게재하자 "모든 걸 내려 놓겠다"라며 잘못을 인정했다.
연희단거리패 대표이자 배우인 김소희는 이윤택 전 예술감독의 성추행 조력자로 지목받자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곧 배우 홍선주가 이틀 뒤 자신의 이름까지 공개하며 김소희 대표의 입장에 정면으로 반박하자 "그 시절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안 나서 벌어진 실수였다"며 입장을 바꿔 사과하기도 했다.
이런 폭로자들은 2, 3차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함에도 용기를 냈다. 때로는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하는 배우들에 의해 자극받기도 했다. 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대중의, 사회의 책임이다. 한 심리삼당가는 "피해자한테만 너무 초점을 맞추는 사회적 구도, 자극적인 증언만을 이끌어 내 재가공되는 기사, 용기 내서 폭로한 당사자에 가하는 비난 댓글이나 피해자 찾기에 몰두해 전화 공격을 멈추지 않는 미디어 등이 폭로자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되고 있다"라고 전하며 피해자들의 보호를 강조했다. /ny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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