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1군에 올라갈 수 있을지… 조금 답답한 건 사실입니다”
지난해 시즌 중반. SK 우완 정영일(30)은 길어지는 2군 생활에 쓴웃음을 지었다. 부상 때문에 2017년이 꼬인 기분이었다. 정영일은 지난해 전지훈련 당시 불펜의 최고 기대주였다. 워낙 공이 좋았다. 오키나와 연습경기 첫 등판에서도 최고 148㎞의 강속구를 싱싱 던졌다. 하지만 나쁜 일은 항상 좋을 때 찾아온다. 정영일은 그 강속구를 던진 경기에서 팔꿈치에 이상을 느꼈다. 곧바로 귀국했다. 코칭스태프에는 허탈감이 감돌았다.
다행히 수술을 면했지만 꽤 오랜 시간의 재활은 불가피했다. SK는 정영일을 좀 더 완벽한 상태에서 복귀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공은 던지고 있는데, 콜업이 늦어지니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드디어 1군에 갔을 때는 오히려 너무 조급했다. 정영일은 “전반기를 다 쉬면서 마음이 너무 급했다.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고 담담하게 부진 이유를 짚었다. 9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은 10.13까지 치솟았다. ‘재기’의 꿈은 또 한 번 물거품이 됐다.
정영일은 “너무 나쁜 생각을 많이 했다. 어려운 부분도 좀 더 지혜롭게 풀어가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시즌은 또 한 번 찾아왔다. 지금은 지난해의 아쉬움은 다 지웠다. 마음가짐도 새롭게 했고, 무엇보다 지금 상태가 좋아 선수 스스로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정영일은 “팔꿈치 보강을 꾸준히 했다. 한 번 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데 수술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지금은 느낌 자체가 너무 좋다. 상무 시절을 포함해 최근 몇 년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처음”이라고 활짝 웃었다.
고교 시절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한 선수였다. 하지만 부상으로 공을 던지지 못하는 시간이 길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한창 좋았을 때의 느낌을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느낌’이 딱 2018년 찾아왔다. 정영일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다. 마음을 많이 내려놨더니 좋아진 부분이 있다. 지난해에 비해 페이스를 늦게 끌어올리자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도 준비했던 대로 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자신감은 변화로 이어졌다. 좋은 몸 상태를 확인한 정영일은 팔 스윙을 바꿨다. 정영일은 “폼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닌데 아마추어 때 원래 팔 스윙이 컸다. 그런데 부상 때문에 나도 모르고 위축되며 스윙이 작아졌다. 작년이 워낙 짧았기 때문에 올해는 더 커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크게 가져가며 강한 공을 던져보려고 한다. 느낌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공백기가 길었다. 예전의 모습을 찾으려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영일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도전한다는 심산이다. 이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도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정영일은 “일단 살아남아 1군 엔트리에 진입하는 것이 첫 목표다. 다음 것은 그 다음에 생각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붙어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덧붙였다. 입단 후 가장 강한 자신감이자, 가장 강한 의지다.
2018년 프리뷰
SK의 문제는 불펜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마무리를 확보해야 하는 지상과제도 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정영일은 지금껏 상대적으로 그 ‘플랜’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정영일을 차세대 마무리 후보로 뽑는 구단 관계자들이 의외로 많다. 그만큼 가진 것이 많다는 뜻이다. 이제 KBO 리그 3년차다. 이제는 그 가진 것을 보여줄 때가 됐다. 전체적인 빠른 공의 힘은 여전히 좋다. 이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다면 슬라이더의 위력도 배가될 수 있다. 선수 스스로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만큼 더 강한 공은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1군에서 뭔가의 ‘감’을 잡으면, 그 이상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다. /skullboy@osen.co.kr